ESC 정책위원회 이성주
지난 25일 토요일, 서울 시청역 근처에서 개최된 ESC와 FOSEP(공공을 위한 과학기술인 포럼)이 공동 주최한 ‘국가 R&D 삭감, 붕괴하는 연구현장’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에 참여했습니다. 저는 지방의 한 대학에서 석박통합과정 4학기를 마무리하는 저년차 연구자로, 정부의 R&D 삭감 발표 이후 ESC 학생위원회에서 배포한 성명서를 보고 ESC에 가입하게 되었고 평소 정책에 관심이 많아 정책위원회에도 가입한 ESC 신입 회원이기도 합니다.
이번 심포지엄은 과학기술계의 위기와 미래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나누고자 기획된 자리였습니다. 아직 연구책임자(PI)로 직접 연구를 이끌어보지 않은 저로서는 평소에 R&D 삭감에 대해서 체감한 것은 지금까지는 크게 없었습니다. 학생 연구자로 그나마 걱정된 것이 인건비 문제였는데 내년에 신입생이 새로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지도교수님께서 아직 아무 말씀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변의 동기들이나 선후배들 역시 대부분 대체복무 중이거나 대학원에 진학하는 대신 임상에 바로 뛰어들어 돈을 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다른 전공에 계시는 연구자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도 심포지엄에 신청하게 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ESC 소속으로 처음 참여하는 행사이다 보니 아무도 아는 얼굴이 없어 걱정했지만 다행히 맹미선 정책위원장님께서 행사 전에 위선희 젠더다양성위원장님을 비롯한 몇몇 ESC 회원분들과의 식사에 초대해주셔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습니다. 학생 대표로 참여하기로 했던 연사분이 불참하게 되어 다른 분께서 그 자리를 대신하는 과정에서 여러 학생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특히 기초과학 전공의 대학원생들은 연구에 대한 꿈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것을 느끼며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행사장에 걸어갔던 것 같습니다.
@ FOSEP 이홍식 연구국장 발표
심포지엄의 1부에서는 실제 정부출연연구원에서 일하고 계시는 이홍식 FOSEP 연구국장님의 ‘윤석열 정부 R&D 혁신방안의 개요와 쟁점’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여러 기사를 통해 어떤 점이 개편되는지 접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문제인지 와닿지 못했고 주변에서 이야기해주는 분들도 없었는데 하나하나 자세하게 알려주셔서 잘 이해가 됐습니다. 기존 제도에서 바뀌는 점들에 앞서 연구개발이 진행되는 방식, 연구비의 구성과 사용 규칙 등 나중에 제가 직접 과제 계획서를 쓴다면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진행되었던 연구 중심대학 육성사업 (World Class University, WCU)의 사례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총 8천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여하여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해외 우수인력들을 초청하는 취지 자체는 좋았지만, 몇 차례의 특강만 한다거나 80%의 참가자가 사업기간 종료 직후 귀국한 사례로 보아 이번 정부에서 추진하는 국제 협력 연구 강화 역시 비슷한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또한, 해외 우수 연구기관과 협력 시 특허를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지, 주요 선진국이 리쇼어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시대에 수출주도형 국가인 우리나라에 적지 않은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 기초연구연합회 천승현 부회장 발표
다음으로 기초연구연합회 천승현 부회장님의 기초연구사업 중심으로 2024 정부 R&D 예산안 분석하는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저 역시 지도교수님의 기본연구 1년차 과제를 수행하고 있기에 체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내년 예산에 현재 수행하고 있는 생애기본연구의 신규과제 예산이 없으므로 저희 실험실이 1년만 더 늦었더라면 과연 저를 비롯한 다른 학생들이 실험은 할 수 있었을지 두렵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나중에 제가 연구책임자가 된다면 생애기본연구가 없는 상태에서 1억원 이상의 과제를 처음부터 따와야 하는데 부회장님이 말씀하신대로 신진연구자가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를 없애는 것이 아닐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아마 저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원생들도 그렇게 느꼈을 것이고 이런 문제들이 하나하나 쌓이다 보면 미래의 연구자들은 더욱더 학계에서 이탈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2부에서는 1부에서 발표하신 분들뿐 아니라 공공연구노조 이상근 ETRI 지부장님, ESC 젠더다양성위원회 위선희 위원장님, 그리고 ESC 학생위원회 김정우님까지 학계, 출연연, 산업계, 학생 등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토론회가 이어졌습니다. 사전에 받았던 질문들에 대해 각자 생각했던 것들을 말씀하셨는데, 모두 현재 정부의 R&D 예산 삭감에 대해 우려할 뿐 아니라 일종의 분노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신진연구자와 중견 연구자의 갈라치기, 카르텔을 없애기 위한 정책이 오히려 카르텔을 양성하는 모순,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존재에 대한 의문, 미래 연구자 수급의 불안정성 등에 대부분 참가자가 공감했습니다.
@ 2부 토론 (좌상 천승현, 이홍식, 이상근 | 좌하 위선희, 김정우, 배상수)
토론회 이후 여러 심포지엄 참여자들의 질문 혹은 의견이 나왔고 뜨거운 분위기가 계속되어 예정됐던 시간을 뛰어넘기도 했습니다. 아쉽게도 내려가는 기차 시간 때문에 급하게 나오느라 다른 참여자분들께 인사도 못 하고 뒷풀이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그곳에서는 행사에서 말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모든 일정이 다 끝나고 가장 먼저 느꼈던 점은 ‘이 심포지엄에 신청하길 잘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전공의 대학원생들뿐 아니라 연구책임자로 실제 연구 현장에서 R&D 삭감의 폭풍을 직접 맞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분들의 분노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과학기술계에 종사하는 연구자분들이 워낙 다양한 분야로 퍼져있기 때문에 하나로 뭉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뭉친 것은 현장 연구자들과의 소통 없이 근거 없는 일방적인 예산 삭감 통보 때문이었습니다. 세수가 부족한 상황 역시 연구자들도 한 명의 국민으로 잘 알고 있으므로 최소한의 양해를 구한다든지 아니면 적어도 관변단체 보조금 증액 등 민심과는 동떨어진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행사 이후 27일 나온 기사(글로벌 R&D 투자 3년간 5조원 이상 확대...PBS 개선 등 R&D 혁신 추진, 전자신문) 에 의하면 1부 발표 때 말씀하셨던 것들, 예를 들어 상피제도 폐지에 대한 의문, 소액 연구과제 중심 구조를 개편하는 것에 대한 우려 등은 반영이 안 되고 그대로 추진하는 듯합니다. 국회 예산안 처리 시한이 12월 2일인 만큼 사실상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도 예산안은 대규모 삭감되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었는데 이에 따른 후폭풍의 책임은 누구에게 물을 것인지, 무책임의 정치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묻고 싶습니다. 부디 내후년에는 현장과의 충분한 소통 후에 연구자들이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 정책이 발표되길 바랍니다.
#국가RnD예산정책
ESC 정책위원회 이성주
지난 25일 토요일, 서울 시청역 근처에서 개최된 ESC와 FOSEP(공공을 위한 과학기술인 포럼)이 공동 주최한 ‘국가 R&D 삭감, 붕괴하는 연구현장’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에 참여했습니다. 저는 지방의 한 대학에서 석박통합과정 4학기를 마무리하는 저년차 연구자로, 정부의 R&D 삭감 발표 이후 ESC 학생위원회에서 배포한 성명서를 보고 ESC에 가입하게 되었고 평소 정책에 관심이 많아 정책위원회에도 가입한 ESC 신입 회원이기도 합니다.
이번 심포지엄은 과학기술계의 위기와 미래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나누고자 기획된 자리였습니다. 아직 연구책임자(PI)로 직접 연구를 이끌어보지 않은 저로서는 평소에 R&D 삭감에 대해서 체감한 것은 지금까지는 크게 없었습니다. 학생 연구자로 그나마 걱정된 것이 인건비 문제였는데 내년에 신입생이 새로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지도교수님께서 아직 아무 말씀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변의 동기들이나 선후배들 역시 대부분 대체복무 중이거나 대학원에 진학하는 대신 임상에 바로 뛰어들어 돈을 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다른 전공에 계시는 연구자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도 심포지엄에 신청하게 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ESC 소속으로 처음 참여하는 행사이다 보니 아무도 아는 얼굴이 없어 걱정했지만 다행히 맹미선 정책위원장님께서 행사 전에 위선희 젠더다양성위원장님을 비롯한 몇몇 ESC 회원분들과의 식사에 초대해주셔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습니다. 학생 대표로 참여하기로 했던 연사분이 불참하게 되어 다른 분께서 그 자리를 대신하는 과정에서 여러 학생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특히 기초과학 전공의 대학원생들은 연구에 대한 꿈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것을 느끼며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행사장에 걸어갔던 것 같습니다.
@ FOSEP 이홍식 연구국장 발표
심포지엄의 1부에서는 실제 정부출연연구원에서 일하고 계시는 이홍식 FOSEP 연구국장님의 ‘윤석열 정부 R&D 혁신방안의 개요와 쟁점’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여러 기사를 통해 어떤 점이 개편되는지 접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문제인지 와닿지 못했고 주변에서 이야기해주는 분들도 없었는데 하나하나 자세하게 알려주셔서 잘 이해가 됐습니다. 기존 제도에서 바뀌는 점들에 앞서 연구개발이 진행되는 방식, 연구비의 구성과 사용 규칙 등 나중에 제가 직접 과제 계획서를 쓴다면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진행되었던 연구 중심대학 육성사업 (World Class University, WCU)의 사례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총 8천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여하여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해외 우수인력들을 초청하는 취지 자체는 좋았지만, 몇 차례의 특강만 한다거나 80%의 참가자가 사업기간 종료 직후 귀국한 사례로 보아 이번 정부에서 추진하는 국제 협력 연구 강화 역시 비슷한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또한, 해외 우수 연구기관과 협력 시 특허를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지, 주요 선진국이 리쇼어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시대에 수출주도형 국가인 우리나라에 적지 않은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 기초연구연합회 천승현 부회장 발표
다음으로 기초연구연합회 천승현 부회장님의 기초연구사업 중심으로 2024 정부 R&D 예산안 분석하는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저 역시 지도교수님의 기본연구 1년차 과제를 수행하고 있기에 체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내년 예산에 현재 수행하고 있는 생애기본연구의 신규과제 예산이 없으므로 저희 실험실이 1년만 더 늦었더라면 과연 저를 비롯한 다른 학생들이 실험은 할 수 있었을지 두렵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나중에 제가 연구책임자가 된다면 생애기본연구가 없는 상태에서 1억원 이상의 과제를 처음부터 따와야 하는데 부회장님이 말씀하신대로 신진연구자가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를 없애는 것이 아닐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아마 저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원생들도 그렇게 느꼈을 것이고 이런 문제들이 하나하나 쌓이다 보면 미래의 연구자들은 더욱더 학계에서 이탈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2부에서는 1부에서 발표하신 분들뿐 아니라 공공연구노조 이상근 ETRI 지부장님, ESC 젠더다양성위원회 위선희 위원장님, 그리고 ESC 학생위원회 김정우님까지 학계, 출연연, 산업계, 학생 등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토론회가 이어졌습니다. 사전에 받았던 질문들에 대해 각자 생각했던 것들을 말씀하셨는데, 모두 현재 정부의 R&D 예산 삭감에 대해 우려할 뿐 아니라 일종의 분노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신진연구자와 중견 연구자의 갈라치기, 카르텔을 없애기 위한 정책이 오히려 카르텔을 양성하는 모순,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존재에 대한 의문, 미래 연구자 수급의 불안정성 등에 대부분 참가자가 공감했습니다.
@ 2부 토론 (좌상 천승현, 이홍식, 이상근 | 좌하 위선희, 김정우, 배상수)
토론회 이후 여러 심포지엄 참여자들의 질문 혹은 의견이 나왔고 뜨거운 분위기가 계속되어 예정됐던 시간을 뛰어넘기도 했습니다. 아쉽게도 내려가는 기차 시간 때문에 급하게 나오느라 다른 참여자분들께 인사도 못 하고 뒷풀이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그곳에서는 행사에서 말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모든 일정이 다 끝나고 가장 먼저 느꼈던 점은 ‘이 심포지엄에 신청하길 잘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전공의 대학원생들뿐 아니라 연구책임자로 실제 연구 현장에서 R&D 삭감의 폭풍을 직접 맞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분들의 분노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과학기술계에 종사하는 연구자분들이 워낙 다양한 분야로 퍼져있기 때문에 하나로 뭉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뭉친 것은 현장 연구자들과의 소통 없이 근거 없는 일방적인 예산 삭감 통보 때문이었습니다. 세수가 부족한 상황 역시 연구자들도 한 명의 국민으로 잘 알고 있으므로 최소한의 양해를 구한다든지 아니면 적어도 관변단체 보조금 증액 등 민심과는 동떨어진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행사 이후 27일 나온 기사(글로벌 R&D 투자 3년간 5조원 이상 확대...PBS 개선 등 R&D 혁신 추진, 전자신문) 에 의하면 1부 발표 때 말씀하셨던 것들, 예를 들어 상피제도 폐지에 대한 의문, 소액 연구과제 중심 구조를 개편하는 것에 대한 우려 등은 반영이 안 되고 그대로 추진하는 듯합니다. 국회 예산안 처리 시한이 12월 2일인 만큼 사실상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도 예산안은 대규모 삭감되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었는데 이에 따른 후폭풍의 책임은 누구에게 물을 것인지, 무책임의 정치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묻고 싶습니다. 부디 내후년에는 현장과의 충분한 소통 후에 연구자들이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 정책이 발표되길 바랍니다.
#국가RnD예산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