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과학자와 피아노 #13. 새해를 열기에 가장 적당한 곡은? - Trilogy Part II

블랙소스
2024-03-01

* 전편에서 이어지는 연속성이 큰 스레드이므로, 이 편을 먼저 여셨다면 전편부터 보고 다시 오시기를 추천드림!

양자색(깔)역학. 영어가 혹 조금 더 편하신 분들을 위해 바꿔 써 보면 Quantum Chromodynamics(QCD). 인류가 만들어낸 숱하게 많은 말 중 이런 것도 있다. 한두 번이라도 들어보신 말이라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본 글을 출발하실 수 있겠지만, 외계어처럼 들리신다고 해도 쉽게 간략한 설명을 곁들일 터라, 특히 시험을 치러야 하는 상황 같은 의무감은 전혀 없으니 아무런 부담은 안지 마시라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를 이어가보겠다. 일단, 이는 물리학의 한 하위 분야인 입자물리학 중에서도 한번 더 하위로 내려간 분야 내지는 이론 체계를 말한다.

특별히 과학기술에 관심이 크지 않더라도 뉴스를 열심히 보신다면, 혹은 경제면만 유심히 보신다 해도, 근래 부쩍 "양자" 기술, 곧 양자 컴퓨터니 양자 암호니 양자 통신이니 양자 센싱이니 하는 말들이 범람하듯이 번지니 '양자' 노이로제에 걸릴 것만 같은 시대다. 한국말로 '~자'로 끝나는 바람에, 이것이 무슨 어떤 특정한 입자 종류를 나타낸다고 여기는 항간의 오해가 무성하지만 영어를 보면 그렇지 못하다. 게다가 '양자'라고 하면, 한국어에서는 이중성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중의어기도 하니 이것이 더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듯하다. 드라마 대사에서까지 등장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그 기묘함이 대변되는 양자역학이니 양자론이니 할 때 나온 말이 양자인데, 이는 어떤 실체 자체를 지칭하기에 앞서 무엇이든 (미시세계에서 뚜렷해지는) 띄엄띄엄하다는 개념성을 나타내는 말이다(더 critical한 분이시라면, 여기서, "그럼, 얼마나 작아야 '미시'라고 할 수 있나"라고 되물을 수 있다, 당연히!). '역학'은 새삼스럽지만, 굳이 표현해 본다면 움직이는 대상을 기술하거나 다루는 방법론적 체계를 일컫는다. 결국, 처음에 꺼낸 저 말은 '양자역학' 사이에다 '색'이란 말을 넣었을 뿐인데 언뜻 듣기에 아주 기이한 외국어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럼, 이 색이란 무엇일까? (색깔이면 색깔이지, 무슨, 이런 것도 질문이냐고?)

눈치 채셨겠지만, 색이 아닌데 색이라고 하기 때문에 물음표를 찍어봤다. 그러함에도 RGB와 같은 세 가지 색으로 구분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수준으로, 더 쪼갤 수 없는 입자 중 쿼크와 글루온만이 지니는, 하지만 세 가지로 구별되는 특성에다 그저 붙인 이름이다. 중요한 점은, 우리 눈으로 관찰하는 색깔이 아님에도(조금 더 기술적으로 표현하면, 그런 파장을 지닌 빛이 아님에도)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는 사실인데,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다양한 상호작용과 현상이 일어난다. 따라서, 이는 언어의 한계를 떠올리게 한다.

비슷한 결의 언어적 표현의 한계가 바로 쇼팽의 작품번호 10-1을 듣노라면 유독 잘 부각된다. 일례로, '풍부한 색채감'이라는 식으로 표현한다지만, 어디 이 정도의 어법으로는, 그 형형색색한 빛깔마다 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그 가운데는 우리가 말로 정의/표현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스펙트럼대가 곳곳에 존재하니 말이다. 더군다나 무엇인지 모를 그 색깔들은 같은 작품을 들을 때마다 또는 연주할 때마다 미묘하게 변하기도 하는 법이다. 쿼크와 글루온의 색처럼, 이 또한 색은 색이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삼라만상을 더욱 진하게 표출하는 근원이 되는 '색'이다. 다만, 소리라는 매개를 통해 유사한 감각을 선사할 뿐. (양자색역학의 '색'과 같은 경우를 포함해, 입자물리학자들이 명명법을 구사한 지경을 접하다 보면 정말 절묘하기까지도 하다. 꼬집은 언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괜히 "particle zoo"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닌 듯하다.)

여기서 잠깐 (아직은 아니지만 토막상식 수준으로 빨리 확산되었으면 하는) 팩트 하나만 건지고 넘어가자. 이 작품에는 "Waterfall"이라는 부제가 따라다니기도 한다. 연상되는 이미지로는 그다지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다. 게다가 24곡이라고 언급한 쇼팽 연습곡의 다른 몇몇 곡에도 이처럼 곡의 느낌에 어울리는 부제들이 붙어 다닌다. 대표적으로, "혁명", "이별(의 곡)", "겨울바람", "나비", "대양", "흑건", "에올리언 하프",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승리", "햇빛" 같은 등등. 하지만 이 가운데, (현재까지 드러난) 문헌상으로 알려진 바로는 쇼팽이 직접 붙인 이름은 없다(다른 당대 작곡가가 붙여준 경우는 더러 있다.). 개인적으로는 부제를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서도(자유롭게 열려 있는 심상이나 느낌을 불필요하게 제한하는 느낌이다), 원 작곡가가 한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의무감을 안고 있던 숙제를 해결할 차례가 된 듯하다. 전편에서 이야기했던, 과학적 사고력 말이다. 계산력을 아우르는 의미라고 했는데, 기우에서 유명한 인용을 하나 하자면, 말 한마디 한마디 그대로는 아니지만(not verbatim), 아인슈타인이 뭐라 했던가. 과학적 사고라는 게 별 게 아니고 상식적 영역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결과일 뿐이라는 투로 말한 적이 있다. 즉, 아인슈타인의 말을 다소 주관적으로 풀었을 수는 있어도, 골자는 우리가 "과학적 사고"라고 이름을 굳이 붙인 과정이 그렇게 어렵고 거리가 먼 무엇은 아니라는 면이다(특히 비이공계 분들이나 과학을 멀게만 느끼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 소위 과학적 사고를 동원했다는 연습기를 펼치자면 별도의 한 꼭지 정도가 필요할 터라, 그 프롤로그(음악에 관한 이야기니까 프렐류드가 더 어울릴까?)로서 간단한 계산을 하나만 하면서(다음 편에서는, 간단하다지만 요 아래 계산의 과정, 그리고 조금 더 복잡한 계산도 나오니 기대하셔도 좋다!) 본 편을 맺으려 한다.

본 곡은, 그렇게나 어렵다고 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자세한 언급을 보류했던) 빠르기(tempo)도 있다. 얼마나 빠르기에? 입시 지정곡은 더러 유행을 타는 면이 있기도 하지만(특히 한국 학교에서는) 이런저런 연주/해석상의 난점 때문에 단골로 꼽히는 곡이기도 하고(물론 그런 난점의 해결 수준이 수험생들 사이에서 평균적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지정곡의 지위에서 조금씩 멀어진다), 각종 권위 있는 (국제) 콩쿠르에서는 지정되는(정말로 너무 어려워서일까?) 법까지는 거의 없지만 선택의 폭이 허용될 때 출전자들이 실력 자랑(?)을 위해, 굳이 주최 측에서 지정하지 않아도 출전자가 알아서 골라 올리기 마련이기도 한 곡이다. 그래서일까, 이 곡은 기교파로 유명한 Franz List에게 헌정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아니겠는가. 다음 영상을 전편에서 공유드린 조성진의 완성된 연주와 비교해 보자. 곡이 훨씬 친숙하게 다가오지 않는지! 


@ 유튜브, Spot of the 18th Chopin Competition


(참고로, 이는 지난 쇼팽 국제 콩쿠르 홍보용 영상으로 제작된 상징적 성장기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수학계 노벨상이라는 필즈 메달 등 해당 분야 최정상급 주인공을 가리는 이벤트의 주기로, 음악 분야의 최고 권위 콩쿠르도 포함해 4년이면 거의 최장 그룹에 들어가기 마련인데 그보다도 긴 5년 주기로 열리는 무게감을 지닌, 그만큼 또 국제적으로도 폴란드라는 나라를 대표하는 행사기도 한 쇼팽 국제 콩쿠르의 홍보 연출용 주제 작품으로 이 곡이 채택된 것은 정말 반갑기도 하지만, 그만큼 이 곡의 포지셔닝이 독특함을 대변하는 셈이기도 하다. )


PS: 
보표상 이 곡의 수학적 연주 시간을 계산하면, 곡 전체 빠르기 지시어는 "Allegro"지만, 4분음표 메트로놈 수치가 176이기에, Presto급 빠르기가 요구되는데, 총 79마디니까 1.795분, 약 108초, 즉 1분 48초다(간단한 산수이므로 계산 가능하시겠죠?). 단, 맨 마지막 마디에는 페르마타(원래 음 길이의 2~3배 내외로 길게 연주하라는 지시)가 붙어 있는 종료음이므로, 전체 1분 50초 선이다. 이 짧은 동안, 오른손은 1,200개가 넘는 음표를 연주해야 한다(그럼, 한음의 길이는 평균 얼마?). 하지만, 음악이 어디, 수학인가(알 듯 모를 듯한 관련성은 깊지만)? 실제로 명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들어보면 1분 50초 내외에서 2분 30초대에 육박하는 빠르기까지 범위가 제법 넓은 편이다. 악보 전체 또한 전편에서 약속드린 대로 영상을 통해 보여드린다! (루체른 페스티벌 경험담에서 언급했던 (마우리찌오) 폴리니의 연주다. 흐름상 당시 자세한 연주자 설명은 그냥 생략하고 암시적으로만 짚었는데, 미루었던 그 주석을 여기에 단다 --- 워낙 현대 피아니즘의 교과서라는 꼬리표를 달 만큼 모범적인 연주를 보여주기로 정평이 나 있는 역시 쇼팽 국제 콩쿠르 우승자며(이 대회 예선에서 이 곡을 완벽하게 연주했는데 그 당시만 해도 대회 성격의 자리에서 올리기에는 적어도 요즘보다는 훨씬 부담스럽게 여기던 시절이라 폴리니의 선택과 완성도는 충격적이기도 했다.), 특히 그 "모범"은 쇼팽 연습곡 녹음에서 전형적으로 인정되다 보니, 아마 개인용 컴퓨터를 쓴다면 십중팔구 그 안에 Windows OS가 들어가 있듯이 전공자는 물론 피아노 좀 한다, 안다, 하는 사람치고 집에 이 녹음을 안 가지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 싶다. (물론 요즘에는 소장이 아니라 구독의 시대라 기준 지표는 달라지겠지만서도 그 영향력은 변함이 없겠다.)   


@ 유튜브, Chopin - Etude Op. 10 No. 1 (Pollini)

- 계속 -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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