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기후위기 이야기 #23 갈라파고스의 두 계절 그리고 바다 이구아나

박재용
2023-12-08


갈라파고스제도는 남미로부터 1,000km 떨어진 적도에 걸쳐진 섬들의 모임입니다. 하와이처럼 맨틀에서부터 올라오는 마그마의 활동으로 형성된 화산섬들이죠. 적도부근이니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있진 않지만 그래도 두 개의 계절로 나뉩니다. 남극부근에서 올라오는 훔볼트해류가 거센 6월에서 11월은 바닷물이 차가워지고 전체적으로 고기압이 형성됩니다. 섬들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건기가 됩니다. 12월에서 5월 사이에는 홈볼트해류가 약해진 틈을 타서 따뜻한 파나마해류가 내려오면서 바다는 따뜻해지고 저기압이 만들어지지요. 비가 자주 내리는 우기입니다.


@ 남아메리카 에콰도르 본토에서 서쪽으로 1000km 떨어진 태평양의 화산 제도를 말한다. 19개의 화산섬과 셀수 없이 많은 암초들로 이루어져 있다.제일 큰 섬인 이사벨라 섬은 위경도가 대략 북위 0° 45′ 39″, 서경 91° 1′ 22″ 정도이며, 이 섬 북부에 적도가 지나간다. (나무위키)


그곳의 바다 이구아나를 생각합니다.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바다의 해초를 먹고 사는 파충류입니다. 포유류 중에선 바다소인 듀공과 매너티가 해초를 먹고요. 원래 바다 파충류나 바다 포유류는 해변에서 살다가 근거지를 바다로 옮기는 경우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초식동물이 해초를 먹으러 바다로 가는 경우는 별로 없지요. 


@ 바다 이구아나


처음 남미에서 표류해온 이구아나들이 섬에 도착했을 때를 상상해봅니다. 이구아나는 어릴 때는 벌레도 먹습니다만 커서는 대부분 초식입니다. 마침 건기였다면 풀들이 말라버렸을 터이니 이구아나들이 먹을 수 있는 건 선인장밖에 없었을 겁니다. 처음 이구아나가 도착했을 땐 선인장들도 자기를 갉아먹는 다른 동물이 없었을 터이니 가시가 그리 많진 않았겠지요. 아예 없었을 수도 있고요. 이구아나는 선인장을 먹으며 건기를 버팁니다. 


홀로 표류해온 터라 자식을 낳기도 힘들었을 수 있습니다만 사실 파충류들은 처녀생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수컷이 필요 없다는 거지요. 수컷도 상륙한 경우가 없진 않겠지만 그들은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겠지요. 결국 암컷이 홀로 알을 낳고 키우면서 숫자를 키웁니다. 어느 날 운 좋게 표류해온 수컷이 있으면 다시 짝짓기를 했을 수도 있고요.


그렇게 섬에 이구아나들이 늘면서 선인장들은 다시 가시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먹기가 힘들어지죠. 더구나 천적이 없는 섬에서 이구아나 개체수는 늘어만 갑니다. 먹는 입은 많고 먹을 건 부족한데 가시까지 나는 상황. 우기에는 그나마 이것저것 먹을 것이 많은데 건기가 되면 춘궁기의 우리네 조상들 마냥 고되기만 합니다.


이 시기에 이구아나는 두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더 높은 산으로 가고, 하나는 해변으로 가지요. 갈라파고스 섬의 고산지역에는 건기에도 가랑비가 내립니다. 차가운 훔볼트 해류를 따라 차가워진 공기가 산을 타고 올라가면서 옅은 구름을 만들고, 이 구름이 가랑비를 뿌리는 거지요. 그래서 아래는 건조한 사막기후지만 산 중턱 위쪽은 녹음이 짙습니다. 먹을 게 많다는 얘기지요.


한 부류의 이구아나는 이 높은 곳의 식물을 먹으러 올라가지요. 그러나 높은 산악지역은 기온이 낮고, 변온동물인 이구아나가 살기에 퍽 좋은 환경은 아닙니다. 추위가 싫은 다른 부류는 해변으로 갑니다. 바닷물이 물러난 썰물 때 해안가에 드러난 해초들을 먹기 위해서죠. 해초는 짭니다. 해초를 먹고 나면 몸 안에 소금 성분들이 항상성을 해칩니다. 어쩌겠어요. 일단 먹어야 사니, 먹고 봅니다.


먹이를 찾아 산으로 오른 이구아나와 해변을 향한 이구아나 두 부류는 각기 자기들끼리 짝짓기를 하며 자연스레 다른 모습으로 진화합니다. 바다이구아나는 차츰 썰물이 아니더라도 얕은 바다로 들어가 해초를 먹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몸은 유선형으로 꼬리는 마치 수달이나 해달처럼 바뀌지요. 코의 소금샘으로 넘치는 몸 속 소금을 뿜어내기에 이르면 해양파충류에 한층 다가간 느낌입니다. 얼굴 형태도 해초를 뜯어먹기 좋도록 바뀌지요.


차가운 훔볼트 해류는 갈라파고스의 섬에 사막기후를 만들었지만 바다에는 커다란 선물을 안깁니다. 산소가 풍부하게 녹아있고 바다 깊은 곳의 영양분들이 표면까지 전달이 되지요. 갈라파고스의 바다는 열대우림처럼 빽빽하게 나는 해초들로 우거집니다. 온갖 해양생물들이 해초와 식물성 플랑크톤을 따라 모여들지요. 그 한 구석에서 해초를 뜯어먹는 바다 이구아나도 풍부한 먹이에 행복합니다. 


그 바다 이구아나가 요사이 괴롭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이곳저곳 난리가 나는데 갈라파고스도 마찬가지입니다. 홈볼트해류가 이전만큼 힘을 쓰지 못하면서 엘니뇨도 잦고, 해수 온도가 올라가니 해초들이 예전만 못합니다. 바다에 먹을 것이 없어지자 바다 이구아나의 일부는 다시 육지를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훔볼트 해류가 힘을 쓰지 못하니 갈라파고스의 고산 지대도 힘듭니다. 비가 이전만큼 내리질 않는 거지요. 산 위에 살던 육지 이구아나 중 일부는 먹을 걸 찾아 아래로 내려옵니다. 사막 기후였던 낮은 지역도 기후가 바뀝니다. 훔볼트 해류가 약해지니 이전보다 비가 잦아지고, 풀들도 자라기 시작합니다. 몇 천 년 서로 떨어져 살던 바다 이구아나와 육지 이구아나가 만납니다. 기후 변화에 따라 갈라파고스의 이구아나 개체 수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살던 곳에서 벗어나면 힘든 법이니까요. 일종의 기후난민이지요. 뉴스에 따르면 바다 이구아나와 육지 이구아나의 잡종이 갈라파고스 곳곳에서 발견된다는군요. 개체는 줄어들고 어떻게든 번식을 하려니 일어난 일입니다.


출처: '녹색성장 말고 기후정의' (박재용 저 | 뿌리와이파리) 내용 중  


작성자: 박재용 (전업 작가, ESC 지구환경에너지위원회 부위원장)
과학과 사회가 만나는 곳, 과학과 인간이 만나는 곳에 대한 글을 주로 썼습니다. 지금은 과학과 함께 사회문제에 대한 통계를 바탕으로 한 글을 자주 쓰고 있습니다. 출간된 책으로는 '불평등한 선진국',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통계 이야기', '1.5도 생존을 위한 멈춤', '웰컴 투 사이언스 월드', '과학 VS 과학' 등 20여 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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