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 김기명
지난 세기 동안 코닥은 사진산업을 대표하는 회사였다. 코닥의 역사는 조지 이스트먼(George Eastman)이 사진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한 후 상품화시킨 1888년부터 시작한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코닥은 미국 필름시장에서 9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할 정도로 지배적인 기업이었다.
그런데 디지털 혁명은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1990년대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했지만 코닥은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지 못했다. 코닥이 디지털 사진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투자를 시작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사실 코닥은 1993년 직원 스티븐 새슨(Steven Sasson)이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했지만 회사는 이 놀라운 발명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코닥 이사회는 사진의 미래는 여전히 필름에 있다고 믿었고 새로운 기술에 대한 투자를 주저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 디지털 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코닥의 점유율을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2012년 코닥은 파산신청을 했고 이제는 거의 사라진 기업처럼 존재하게 되었다.
코닥의 사례는 변화하는 상황에 충분히 대처하지 못한 기업의 교훈적인 얘기다.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지 않으면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며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에너지 전환 늦추는 게 이익이 된다는 착각
기후변화에서 에너지시스템의 근본적인 전환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전환의 중심에는 전기가 있다. 최종에너지 수요를 전기로 바꾸는 과정의 전기화(electricifation)가 에너지 전환의 중심축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전기화의 본질은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에너지 시스템의 탈탄소화에 있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는 열원과 동력원으로 직접적으로 사용되거나 일부 전기로 변환되어 활용된다. 하지만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주로 전기를 생산하기 때문에 우리는 최종 에너지 수요를 전기로 전환해야 한다.
이러한 에너지 활용 체계의 근본적인 변화는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물론 시간과 날씨에 따라 전기 생산능력이 변화하는 고유의 속성 때문이겠지만 우리가 전기공급 체계를 구축할 때 이러한 재생에너지의 대규모 확장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기존 체계와의 이질성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지적받는다. 이러한 문제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변화를 방해하는 장애요인이 된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전쟁을 거치면서 에너지 가격과 에너지 안보라는 현실을 고려해 에너지 전환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도 한다. 대규모 투자와 불충분한 기술을 활용해야 하는 거대한 장벽을 넘기 어렵다는 인식을 퍼뜨리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론은 변화의 시급성과 이미 진행하고 있는 진전을 제대로 살펴보기 어렵게 만든다.
특히 에너지 산업은 정부의 정책에 크게 좌우된다. 그렇기에 정부와 정책의 변화에 따라 언론 지형도 변화하며, 미디어에 노출되는 전문가의 의견은 정치적 환경에 영향을 받기 쉽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은 사실과 의견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대중이 에너지 전환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어렵게 한다. 현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며 에너지 전환을 늦추는 것이 이익이 된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이 극소수가 이끄는 국지적인 움직임이 아닌 전세계가 동참하는 거센 변화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유럽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은 새로운 에너지 산업 지형을 개척하고 거기서 기회를 얻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변화는 우리의 생각보다 빠르고 의심과 망설임은 이 순간의 중대한 의미를 놓치게 만들 수 있다.
패러다임 변화가 가져올 혁신 기회 잡아야
우리가 변화의 속도를 늦추게 된다면 분명 후회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수십년 후 우리는 이 시점을 대한민국 에너지 전환의 '코닥의 순간(Kodak moment)'으로 부르게 될지도 모른다. 에너지 산업은 다른 산업을 지원하는 기간산업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성장동력이 되는 주력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현재의 문제들을 해소시킬 기술을 빠르게 도입하고 발전시킬 기반을 형성할 수 있을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주요 경쟁국과 선진국의 변화를 먼발치에서 구경하는 관찰자에 머물러서는 이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가져올 혁신적 기회를 얻을 수 없다. 진정한 에너지 현실론은 현실에 갇히는 게 아니라 미래를 위한 진보를 바라보는 데 있다.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전기공학)
내일신문과 ESC가 함께 과학칼럼 코너를 신설해 2023년 새해부터 매주 화요일 '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찾아갑니다. ESC 회원 과학자 칼럼니스트들의 맛깔난 '우리를 둘러싼 과학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사원문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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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 김기명
지난 세기 동안 코닥은 사진산업을 대표하는 회사였다. 코닥의 역사는 조지 이스트먼(George Eastman)이 사진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한 후 상품화시킨 1888년부터 시작한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코닥은 미국 필름시장에서 9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할 정도로 지배적인 기업이었다.
그런데 디지털 혁명은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1990년대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했지만 코닥은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지 못했다. 코닥이 디지털 사진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투자를 시작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사실 코닥은 1993년 직원 스티븐 새슨(Steven Sasson)이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했지만 회사는 이 놀라운 발명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코닥 이사회는 사진의 미래는 여전히 필름에 있다고 믿었고 새로운 기술에 대한 투자를 주저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 디지털 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코닥의 점유율을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2012년 코닥은 파산신청을 했고 이제는 거의 사라진 기업처럼 존재하게 되었다.
코닥의 사례는 변화하는 상황에 충분히 대처하지 못한 기업의 교훈적인 얘기다.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지 않으면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며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에너지 전환 늦추는 게 이익이 된다는 착각
기후변화에서 에너지시스템의 근본적인 전환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전환의 중심에는 전기가 있다. 최종에너지 수요를 전기로 바꾸는 과정의 전기화(electricifation)가 에너지 전환의 중심축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전기화의 본질은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에너지 시스템의 탈탄소화에 있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는 열원과 동력원으로 직접적으로 사용되거나 일부 전기로 변환되어 활용된다. 하지만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주로 전기를 생산하기 때문에 우리는 최종 에너지 수요를 전기로 전환해야 한다.
이러한 에너지 활용 체계의 근본적인 변화는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물론 시간과 날씨에 따라 전기 생산능력이 변화하는 고유의 속성 때문이겠지만 우리가 전기공급 체계를 구축할 때 이러한 재생에너지의 대규모 확장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기존 체계와의 이질성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지적받는다. 이러한 문제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변화를 방해하는 장애요인이 된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전쟁을 거치면서 에너지 가격과 에너지 안보라는 현실을 고려해 에너지 전환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도 한다. 대규모 투자와 불충분한 기술을 활용해야 하는 거대한 장벽을 넘기 어렵다는 인식을 퍼뜨리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론은 변화의 시급성과 이미 진행하고 있는 진전을 제대로 살펴보기 어렵게 만든다.
특히 에너지 산업은 정부의 정책에 크게 좌우된다. 그렇기에 정부와 정책의 변화에 따라 언론 지형도 변화하며, 미디어에 노출되는 전문가의 의견은 정치적 환경에 영향을 받기 쉽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은 사실과 의견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대중이 에너지 전환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어렵게 한다. 현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며 에너지 전환을 늦추는 것이 이익이 된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이 극소수가 이끄는 국지적인 움직임이 아닌 전세계가 동참하는 거센 변화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유럽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은 새로운 에너지 산업 지형을 개척하고 거기서 기회를 얻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변화는 우리의 생각보다 빠르고 의심과 망설임은 이 순간의 중대한 의미를 놓치게 만들 수 있다.
패러다임 변화가 가져올 혁신 기회 잡아야
우리가 변화의 속도를 늦추게 된다면 분명 후회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수십년 후 우리는 이 시점을 대한민국 에너지 전환의 '코닥의 순간(Kodak moment)'으로 부르게 될지도 모른다. 에너지 산업은 다른 산업을 지원하는 기간산업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성장동력이 되는 주력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현재의 문제들을 해소시킬 기술을 빠르게 도입하고 발전시킬 기반을 형성할 수 있을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주요 경쟁국과 선진국의 변화를 먼발치에서 구경하는 관찰자에 머물러서는 이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가져올 혁신적 기회를 얻을 수 없다. 진정한 에너지 현실론은 현실에 갇히는 게 아니라 미래를 위한 진보를 바라보는 데 있다.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전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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