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학(책)도 (기계)번역이 되나요? [6] - 고유명사도 번역을 해요? (1) -

블랙소스
2024-09-03


과학책을 번역하다 보면 과학자 이야기가 나오면서, 대개는 그들이 속한 학교나 기관명도 같이 등장하기 마련이라는 언급을 했다. 이번에는 학교명, 기관명에 관해 고려할 사항들을, 다소 짜임새는 약하더라도 경험을 되새겨보는 흐름에 따라 풀어본다. 


먼저, 학교명에서도 맥락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고스란히 살아남은 원어로 대표적인 말은 'Institute'다. 한국에서는 연구기관명에 쓰이기도 하지만, 학원과 같은 정도의 명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아무튼 연구소도 교육 기능이 있을 수 있고, 원래 이 말은 teaching이 일어나는 어디서나 쓰일 수 있는 말이므로, 아직은 그렇게 이상한 구석은 없다. 


그럼, 이 단어가 들어간, 그리고 정말 명성이 높아서 아예 약어 자체가 고유명사가 된 기관 중 가장 잘 알려진 곳은 어디일까? (이쯤에서 댓글로 달아주셔도 좋다~) 필자에겐, 식견이 그리 넓지는 않아서, MIT가 단연 먼저 떠오른다. 코흘리개도 안다는 소위 그 '쩌는' 명성 아닌가. 점점 자취를 감추겠지만, 이곳은 사실 학교다 보니 "MIT 공과대학" 또는 "MIT 공대", 조금 심하면 "MIT 대학교"라고 표기하는 경우를 아주 공식적인 출판물에서도 접하고는 했다. 요즘은 네트워크의 발전으로 정보 유통이 과거와 같지 않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런 해프닝은 일어나기 어렵다고 보지만, 아무튼 고찰할 거리가 있어 굳이 이야기를 이렇게 꺼냈다. 그럼, MIT의 한국어 '번역'은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보시라! 보통 (준)고유명사는 번역이라는 관념을 잘 떠올리지 않는데, 심지어 인명이나 지명까지도 단순한 차음이나 표기가 아니라 엄연히 '번역'이다. 이 문제는 나중에 또 자세히 다루겠다.)


필자가 제안하기로는, 조금 올드한 감각일 수 있지만, "메사추세츠 공과대학교"다. '단어 by 단어'로 가장 용례가 많을 법한 의미로 조합해 옮긴다면, '메사추세츠 기술 연구소'가 될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런데, 이미 이 이름은 워낙 유명하므로, 사실 잘못 옮길 가능성은 낮다. 즉, 유명하다는 말은, 어느 정도 맥락이나 배경도 같이 전달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가령, 어디 정말 알려지지도 않은 지명의 시골 구석에, MIT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IT라는 곳이 있다고 하자. 그럼, 배경을 파악하지 않으면, '메사추세츠 기술연구소' 같은 번역이 충분히 나오고도 남는다. 아울러,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에서는 '대학'과 '대학교'는 또 유의미하게 구별되기도 해야 하므로 위와 같이 쓴다. 마찬가지로, 예전엔 CIT라고도 좀 쓰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거의 안 쓰이고(혹시 MIT랑 다른 존재감을 위해서?) 그냥 Caltech로 약어가 아닌 축약형을 쓰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도 비슷한 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끝이 아니다. 정답 없다는 번역의 난감함을 더하는 까닭은, 위에서는 유명한 이름이 수월한 측면을 언급했지만, 오히려 같은 이유에서 더 까다로워지는 측면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골치일까? (어차피 필자의 주관이기는 하지만, 본 연재의 흥행(이 목적은 아니다)을 위해, 댓글로 이를 맞추거나 그보다 더 신박한 답을 남기신 분께는 약간의 소확행적 기쁨을 드리기로 약속한다! 이 설명은  추후('직후'가 아니다) 포스팅(언제가 될지 모르지만)으로 미룬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institute'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보자. 위에서는 적어도 독립적인 집합체 정도의 선에서 의미를 살펴봤는데, 여기서, 집합체란 그 안에 다른 하위 조직을 또 여럿 두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규모에 따라서는 이 하위 수준에서도 여전히 이 같은 단어가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상기에 언급한 경우보다 오역이 잦은 예로, institute의 의미가 학과일 때다. University의 규모가 크다면, 그 안에는 Department는 Department대로, 또 각종 연구소나 연구센터는 또 그 소나 센터대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모 대학교의 무슨무슨 'institute'라고 하면 십중팔구 '연구소'나 '연구원'이라는 한국어로 옮겨도 문제는 없을 듯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십중팔구가 '정말로' 아닌 경우다. 


아주 큰 대학, 특히 연구중심 대학이라면 수학과, 즉 Department of Mathematics가 없다는 상상은 하기 어렵다. 아주 단단한 여러 학문의 뿌리니까. 하지만, 간혹 이 이름이 없고, Mathematical Institute만 있는 university를 발견했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는 institute를 '학과'가 포함된 의미로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거의 100%다. 따라서 미숙한 역자라면 이를 무심코 '수학연구소'로 처리하고, 가볍게 넘기고 지나가기 쉽다(그런데, 우연히도, 이런 조직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기능적 특성을 골고루 고려할 때 이를 딱 '오역'이라고 단정하기도 쉽지 않다.). 한국인들에게 한국어로 전해야 한다면, 이 또한 그냥 '수학과'다. 실제로 명문 중 하나인 Univ. of Oxford의 수학과 명칭이 그러한데, 그들 일상의 언어에서는 deparment가 등장하니 관념적으로는 그냥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다만, 학생 2,000명이 직/간접적으로 적을 두고, 교수진이 100명에 달하는 규모라면, 진짜 'Institute'라 해도 손색이 없긴 하지만 말이다(사실 이쯤 되면 양 언어 사이에, 그리고 이 두 단어 사이에 ontological한 관계가 생각보다 복잡미묘해진다.). 여담이지만, 이 곳과 라이벌로서 대중적 인식이 자리잡은 Univ. of Cambridge 또한 Department of Mathematics는 (다른 이유에서) 없다. 


하지만, 정말 더 큰 문제가 적어도 하나 아직 남는다. 학과 규모, 기능 등을 암시하는 더 광의의 의미냐 아니냐는 어떻게 보면 배경만 조금 더 파악해보면 분명해지기도 해서 최고 난도는 아니다. 심지어 하루 이상 진도를 못 나가게 되는 병목의 이유는 이렇다. 아예 (research) 'center'라면 모를까, institute는 과연 '연구소'일까 '연구원'일까? 

- 계속 -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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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도 번역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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