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과학자와 피아노 #25. 피아노 브랜드 열전 - YAMAHA(야마하) [1/2]

블랙소스
2024-07-08

ec160b0c11fe7.png


아무래도 한국에서 가장 친숙한 외산 브랜드는 야마하(YAMAHA)다. 악기 제조사가 아닌 다른 사업을 하는 회사명으로 아는 분들도 계시긴 하고 사실이기도 하다. 야마하를 피아노 제조사보다는 음향기기 대기업으로 분류하는 편이 조금은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오디오 라인업도 상당하고, 요소 기술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당연하기도 하겠지만 디지털 피아노(는 어떤 면에선 악기라기보다 오디오)도 만들고 있으니까. 참고로 모빌리티 계열(오토바이 등) 사업도 거느리고 있었지만, 지금은 회사가 분리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 외 스포츠용품도 더러 제작했거나 하고 있으며 그 중에선 아무래도 골프채가 가장 유명하지 싶다. 악기랑 골프채는 무슨 상관이냐 싶겠지만, 악기/오디오 기술을 골프채에 적용해서, 차별화된 타구음이 난다는데 골프는 문외한이라 다양한 골프채 소리를 아직은 직접 비교 청음(?)해본 적이 없다.


아무튼 피아노 화두로 돌아와서, 국산이 아니더라도, 말 많고 탈 많은 일제의 하나라도, 익숙해서인지, 아무래도 국제 무대에서, 가령, 콩쿠르에서 야마하가 보이면, 즉 야마하를 선택한 출전자를 보면, 더 정이 가고 더 응원도 하게 되는 듯하다. 어쩌면 독보적인 스타인웨이를 향한 질투감의 발현일지도 모르겠다. 스타인웨이를 모른다면, 당연히 "Y A M A H A"라는 검정 유광 위에 찍힌 금색 활자 또한 그 존재감이나 아우라는 따를 자가 없었겠지만, 스타인웨이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위용은 확실히 남다른데, full concert grand를 기준으로, 어쨌거나 스타인웨이와 자웅을 겨룰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하기 때문이다. 물론 피아노 제조사마다 full concert grand만큼은 그 기업의 모든 공력을 집결해 제조하는 대표상품이기도 하므로, 그러고도 스타인웨이와 비교 대상 자체가 못 된다면 굳이 본 열전의 후보로서는 적합하지 않겠지.


사운드로 볼 때, 스타인웨이가 대체로 (사실 표현력이 풍부한 악기를 이렇게 한마디로 압축해 묘사한다는 행위는 어찌 보면 모독이지만) 자연스러우면서도 탄산수 같은 느낌이라면, 야마하는 대체로 (다소 인위적으로) 예쁘장한 소리가 나기에 화장품을 연상케 한다. 야마하 소리가 다소 답답하다고 느끼시는 분들도 계신데, 이는 그랜드 피아노 계열 중 CF가 CFX로 flagship이 업그레이드되면서 많이 달라졌다, 심지어 야마하가 예전 야마하가 아니라는 평까지도 듣게 된다. 버거에 빗대면, 스타인웨이는 소량 고퀄 수제 버거와 비슷하고, 아무래도 판매/생산량이 많은 야마하는 McDonald's 같은 느낌이다(프랜차이즈 버거가 정크 푸드 이미지를 오래도록 짊어지고 왔지만 가격과 맛을 고려하면 사실 어느 새 꽤 준수해졌다고 본다.). 실제로 야마하의 경우 가와이(KAWAI) 등을 포함해, 가장 고도화된 제작법을 도입해 로봇과 컴퓨터 제어 설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제조사 중 하나다. 이 두 사는, 가와이는 나중에 다시 다루겠지만, 하이브리드 피아노 또한 개발하면서 피아노 제조 및 진화 가능성의 미래를 한 차원 더 높이기도 했다. 물리적으로 디지털 사운드를 내고 있음에도, 그 울림과 연주감이 원(어쿠스틱) 그랜드 피아노의 느낌을 "정확히" 재현하려는 시도로서 말이다(우리가 CD로 음악을 들을 때도 비슷하다, 디지털 소리를 듣는다고 느끼지 않고 실제 음악을 듣는 듯이 인식하지 않는가?). 


개인적으로도 태어나서 아마 야마하를, 물리적으로 가장 많은 시간 접했다고 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적어도 피아노와 물리적으로나 비물리적으로 상호작용한 밀도 면에서는 가장 가까운 브랜드로 꼽아야겠다. 전공자도 직업 연주자도 아닌데, 그만큼 아주 이상적인 피아노로 아주 괜찮은 공간에서 집중 연습을 경험해보기란 아주 어려웠을 영국 체류 시절을 포함해, 국내에서도 야마하 모델 중 인기 높은 라인은 그런 대로 꽤 써본 듯하다. 야마하에 얽힌 경험을 모두 풀어놓기엔 이런저런 부적절함이 있으니, 그 중에 바로, 저 아주 이상에 가까웠던 기억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꺼내본다.


사실, 영국에 처음 갈 때, 학생 신분으로, 한국에서 쓰던 피아노를 가지고 가고 싶은 바람은 완전한 비현실이었다. 나 혼자 집을 구해서 있을 상황이 아니라, 분명 소위 '기숙사'(라는 표현은 안 쓰는 학교였다)에 머물고 심지어 1년 단위로 짐을 옮기는 생활이 예상되니, 비용 문제 이전에 환경 자체가 피아노를 이고 다니면서 연습하기에는 아주 험난한 셈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물리에 정말 미쳤던 상태인지 피아노는 못 치게 되더라도 그놈의 물리를 하겠다는, 대체 우주가 뭘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새롭게 파헤쳐보겠다는 일념으로 영국행을 택했던 듯하다.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 그건 지금 돌아보면 당시의 내가 딱 그런 꼴이었다. 적어도 두세 가지 면에서 그러했다. 해외경험이란 게 영국으로 유학하던 그것이 바로 처음이었는데, 한국에서 동네 학원을 오가며 피아노 레슨을 받고 가끔 귀하게 지상파로 나오는 녹화 공연이나 실제 명연주자들의 내한 연주(도 상당히 드물던 시절)를 접했던 정도의 시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앞일들. 일단, 가서 보니, 악기 하나쯤 하는 건 전공을 하지 않아도 다 당연하다 싶은 분위기의 학교, 즉 (음대라고 하기에는 음악 계열 세부전공 몇 분야 정도만 공부할 규모임에도) 전공에 무관하게 학생들이 연습만 하려면 얼마든지 공짜로(!) 할 수 있는 환경은 생각보다 풍족(?)한 편이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거기는 아예 그 문화권이니 당연지사였을 걸, 왜 피아노 연습을 못 하리라는 걱정, 내지는 불안에 휩싸였을까, 스스로 한심해지기도 했다.   

- 계속 -

* 과학자와 피아노 #21 피아노 브랜드 열전 - Steinway & Sons(스타인웨이)

9166e223788b8.jpg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과학자와피아노

+ 과학자와 피아노 연재 목록 보기


ESC 진행 (예정)행사 (참여하면 넓어지는 과학 이야기)


7월 27일(토) 10:00


8월 18일(일) 15:00


8월 31일(토) 14:00

숲사이는 ESC에서 운영하는 과학기술인 커뮤니티입니다.
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공지 
(04779) 서울특별시 성동구 뚝섬로1나길 5, G601 (성수동1가, 헤이그라운드 성수 시작점) 

Copyright ⓒ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All rights reserved.    


운영진 게시판 


숲사이는 ESC에서 운영합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공지

(04768)  서울특별시 성동구 뚝섬로1나길 5, G601

Copyright ⓒ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All rights reserved.
운영진 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