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숲터뷰 #6 저는 실패한 유학생의 전형입니다! - 식물병리학자 장찬용

숲터뷰
2024-05-29


<포스닥 기간 advisor Dr. Anne E. Simon과 함께>

🌱 숲터뷰란?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에서 운영하는 과학기술인커뮤니티 ‘숲사이’에서  진행하는 인터뷰, 이를  '숲터뷰'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만들었습니다. ‘숲터뷰’는 과학기술을 통해 우리 사회의 새로운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주제를 기획해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 숲터뷰 첫 주제 시리즈는 '실패' 
숲터뷰 시리즈의 첫 번째 주제로 '실패'를 선정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과학기술인들이 겪은 실패 경험을 통해 과학과 교육의 의미와 가치를 함께 생각해보는 인터뷰입니다.

 #숲터뷰 #숲터뷰_실패 #숲사이에서만난과기인

#프롤로그

숲터뷰가 찾아 가는 곳은 국내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팬데믹 이후, 줌 미팅이 우리 생활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으면서 먼 곳에 사는 분들의 이야기도 쉽게 들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 미국에 사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줌으로 만나 실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국제학술위원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고 계신 장찬용 님께서, 실패에 대해 하실 말씀이 많으시다고 하셨어요. 부푼 꿈을 안고 미국에 나온 지 벌써 10여 년이나 된 지금, 미국에서 공부하며 일하며 느낀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어요?

숲터뷰 진행/작성: 이경선 


Q. 자신의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식물병리학을 연구하는 장찬용이고 현재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식물을 대상으로 하는 RNA 테라피를 연구하는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미국 켄터키 대학(University of Kentucky)에서 박사를 마친 후 메릴랜드 대학(University of Maryland)에서 박사후 과정을 마쳤습니다. 현재 회사에 취직한 지는 한 달 반 되었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은 수목에 발생하는 특정질병을 방역 혹은 예방할 수 있는 도구로 siRNA라든가 antimicrobial 펩타이드를 이용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주로 식물 바이러스를 운반체로 하여 이러한 기능적 생체 분자들을 식물체 내에서 발현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현재 회사에서 하는 연구는 포닥 때 하던 연구의 연장선상인데요, 운반체로 사용하는 바이러스 유전체 안에 앞서 언급한 siRNA나 antimicrobial peptide(항균펩타이드)를 발현할 수 있는 외부 유전자 서열을 넣었을 때 그 서열이 바이러스에 의해 삭제되지 않고 오랜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안정화 방법을 연구했고, 이 방법이 특허가 되었어요.

일반적으로 바이러스의 유전체를 어떤 특정 염기 서열의 정보로만 대부분 인식하지만, 그 염기서열이 만들어내는 2차원적인 구조를 진화적인 결과물로 보고 그 과정을 이해하면서 바이러스의 외부 서열 삽입 이후의 진화적 역행을 최소화 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라 하겠습니다. 그동안 이런 외부 서열 삽입에 의한 바이러스의 반응이 바이러스를 실용화하는 데 큰 장애물로 여겨져 왔는데 저희 특허는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식물 바이러스를 산업화하는 방안을 현재 회사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22대 총선 재외선거 참여> 

 

#  대학원 진학과 해외유학

Q. 식물병리학을 연구하시게 된 계기와 유학을 나오신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입시를 기준으로 그 이전의 학창시절에 그렇게 공부에 큰 뜻을 둔 사람은 아니었고요, 막연히 과학을 좋아했지만 그것보다는 삶의 종교적 의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내가 선택하지도 않았고 선택할 수도 없는 생의 사이클을 왜 나는 살아내야 하나, 그럼 난 뭘 위해서 살아야 할까, 이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원래는 신학교에 갈까 했지만, 어머니가 반대하셨죠. 막연하게 과학을 공부하면 신의 섭리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고3때 담임이셨던 국어 선생님이 너는 장래 희망에 과학자가 들어 있으니 그런 쪽으로 가보라는 추천, 그리고 2000년대 초반에 황우석 박사의 영향으로 한참 생명공학이 유망해 보여서, 집에서 가까운 근처 국립대 응용생물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응용생물학과라고 해서 아~뭔가 엄청난 새로운 생물학인가 보다 재미있겠는데 하면서 진학했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농생물학과가 이름을 바꾼 거였어요. 사람들이 농대는 뭔가 고리타분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다분했지만 저에게 학교 생활은 정말 재미있었어요. 일찌감치 실험실에 들어가서 선배들을 도우면서, 직접 현장에 나가 농약도 치고, 농민들도 만나며 방재연구에 참여도 해 봤는데 그게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제가 소위 대학 운동권의 끝물이었는데 뭔지도 모르고 선배들 따라서 농활다니는 데 미쳐있던 때라서 농민을 위한 연구를 한다는 자부심도 좀 생기던 때였습니다. 이 때쯤 한국에 분자 생물학적 방역에 대한 아젠다가 처음 논의되기 시작했는데, 이 분야에 특별히 관심은 가지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석사 박사까지 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재밌는 일 중에 하나였지요.

군대에 다녀와서 그냥 복학해서 적당히 졸업해서 취직할 생각이었습니다. 노는 데 관심이 더 많았고, 그냥 '이왕 태어나 사는 김에 지구나 열심히 돌아다니자!'라는 마음으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박사나 뭔가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한 무엇인가 할 생각이었으면, 그렇게 싸돌아다니진 않았을 거예요. 호주에서 워킹홀로(리)데이를 하면서 1년 넘게 농장을 떠도는 생활을 했는데, 사실 지금껏 가장 행복했던 기억인 것 같습니다. 이 때쯤 신과도 결별했구요.

<미국 유타주 Zion Canyon 여행 중>

<호주 워킹홀로(리)데이 농장> 


왜 학계의 농담중에 소년이 죄를 지으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죄를 지으면 대학원에 간다고 하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투표를 잘못한 죄로 대학원게 가게 되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투표를 해서 정권이 바뀌었고 제 표도 거기에 일조를 했는데, 제 표가 차를 만드는 가장들과 철거민을 죽음으로 몰더라구요. 그리고 그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위해 거리로 나온 학생들을 머리위로 꽂히는 군홧발이 되구요. 투표를 해 놓고 보니 약한 사람들은 고통받고 힘있는 사람들이 더 득세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협력했다 싶더라구요.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이지만, 스스로에게 충격이 컸고, 죄의식과 부채의식이 커졌어요. 처음으로 세상에 이건 아니다라는 목소리를 내고 싶었고 이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의식이 생겼어요. 소위 말하는 사회에서 힘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제 주변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시민이더라구요. 그리고 지방대학생 출신이 교수가 되는 길은 당시 제가 본 풍경에서는 유학을 다녀오는 게 유일한 방법처럼 보였습니다. 통계가 그렇게 보여주더라구요. 그래서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지요. 지금도 그렇지만 농사가 가장 귀한 일이라 생각해서 농학 언저리를 떠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세분화해서 이왕이면 식물병리 중 식물 바이러스, 그리고 그중에서도 희소한 negative strand RNA virus로 학위를 받는게 전략적으로 임용 기회가 더 있지 않을까라는 당시의 생각으로 유학 갈 실험실을 찾게 되었습니다.


Q. 박사학위를 위해 유학 나오셔서 박사 후 과정 그리고 취직까지, 쉽지 않으셨을 여정이 궁금합니다

이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한 이유기도 한데요. 비가역적으로 현상을 바꿔놓는 실패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었습니다. ‘돌아보니 극복했더라’라는 것보다, 꿈이 실현 불가능한 현실로 고착화되는 과정으로서의 실패의 한 예로서 저의 경험을 나눠보고 싶었거든요. 제 박사 유학 생활을 돌아보면 ‘실패한 유학'의 전형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정확히는 남 탓하기는 부끄럽고 내 탓하기는 억울한 상황의 연속이랄까요? 막상 유학을 와서 학위 과정을 시작하고 보니, 기대했던 유학과는 전혀 거리가 먼 상황이었지요. 제가 지원 과정 중에 알아보고 이야기 들었던 것과는 달리, 학위과정을 시작한 후 실험실에 사람들이 다 빠져나갔고, 2년차 되는 시기에 실험실에 예산이 다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그 이후 1년 반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구요. 1년 반 동안 프라이머 하나를 못 시킬 정도로, 아무런 연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 기간 동안 어차피 마쳐야 하는 코스 워크와 수업 조교만 하면서 논문을 읽으며 보냈어요. 그러면 안되었는데 사비로 몰래 프라이머 사서 실험하기도 했고요.

실험을 해서 실패를 하면 상관없는데, 아예 실험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있으니까 정말 미칠 것 같더라구요. 누군가는 왜 거기서 멈추지 않았는지, 포기하고 그만두지 않았냐고, 왜 다른 데로 옮기지 않았니라며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당시 그 상황에서는 ‘조금만 더 있으면 괜찮아 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내가 선택한 것에서 도망친다고 더 나은 상황이 될 거라는 보장도 없었구요. 지도교수님도 계속 제안서를 넣고 있는 상황이니까, 이것만 되면 하려던 실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러다 3년차가 거의 지나고 다시 실험을 할 수 있었고, 논문 두 편 정도를 쓰고 간신히 졸업을 했어요.

졸업을 준비하면서, 특히 논문을 쓰면서 정말 힘들었어요. 제가 했던 실험들과 그 데이터를 보는 게 고역이었거든요. 이게 도대체 내 이력서 몇 줄 이외에 어떤 의미가 있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이런 식으로 졸업하면 학위로 사기치는 사기꾼밖에 더 되겠나 싶은 자괴감도 들었구요. 졸업 바로 전 해에 박사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으로 남극 극지연구소 월동대에 지원도 했었어요. 최종 면접까지 갔는데, '왜 가고 싶냐?'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데 ‘나는 박사과정에 실패했고, 거기서 도망쳐 나와 그 다음 단계를 준비하기 위해 이걸 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나를 꾸며내면서 하는 게 너무 창피하고 말도 잘 안나오더라고요. 결국 떨어졌어요. 농담 삼아, 박사 과정도 실팬데 탈출도 실패했다고 지인들에게 웃으면서 말하곤 해요.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졸업 요건을 충족할 수 있게 되고, 졸업 전 마지막 학회에 가서 그간 연구한 걸 발표하면서 다른 식물 바이러스 연구하시는 분들에게 박사후 과정을 위해 컨택을 시도했었어요. 이때도 그만 하고 한국으로 들어갈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조금만 더 가 보자, 이렇게 연구도 제대로 못 해 보고 간신히 졸업만 해서 한국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 박사후 과정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운 좋게 그 학회 기간에 맺은 인연으로 메릴랜드 대학에서 포닥을 시작했어요. 포닥 생활은 솔직히 정말 좋았어요. 제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연구자로서 가장 즐거웠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저희 분야에서 ‘빅 가이'라고 불리는 교수님 연구실에서 일 할 수 있었고, 연구도 잘 되고, 좋은 동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허도 나오고, 그 특허 덕분에 지금 회사에 취직도 할 수 있었죠. 다만, 특허 때문에 논문을 투고할 수는 없었다는 게 흠이라면 흠일까 싶네요.


<포닥 생활 마무리하면서 실험실 동료들과 함께>

 

# 유학생에게 실패란? 

Q. 미국에 오셔서 현재까지 여정이 쉽지는 않았는데요, 그 밖에도 외부의 사정으로 연구를 지속하는데 어려움이 있거나 좌절하는 경험이 있으셨나요? 

박사를 마치고 포닥을 하신 후 연구직에 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연구 커리어의 가장 중요한 시기 중의 하나는 박사후 과정이예요. 박사를 마치고 새로운 연구실에서 연구자로 일하면서 동시에 기존 연구실에서 쓰던 논문들을 마무리지어 이 기간 동안 출판하고, 이 실적이 자기 연구 커리어가 되어 다음 단계의 디딤돌이 되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 시기에 박사를 했던 연구실과 계속 연구를 할 수 없게 되었어요. 제가 박사를 마치고 1년 후 갑자기 교수님이 돌아가셨어요.

모든 게 사라져 버린거죠. 데이터도 만들어 놓은 구조체들도…그렇다고 그것들을 제가 회수하지도 못하구요. 이미 제 소유가 아닌 이전 대학의 소유고 전 더 이상 거기 소속이 아니니까요. 당연히 뭔가 추가적인 경력이 될 만한 연구 데이터들이 원천적으로 사라져 버린 상황이 된 것이지요. 박사 과정에 있는 동안, 한인 대학원생들끼리 모여서 하는 말이, 한국에서 교수가 되고 싶으면 각 대학 교수들 건강 상태도 다 알아 놓아야 한다는 말들을 농담처럼 했는데, 다른 식으로 크게 와닿는 일이 제게 직접 생긴 것이지요.

Q. 이런 예상치 못한 실패와 좌절의 경험들을 어떻게 극복 하셨나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존버 하라!'고. 정말 오늘 보다 내일이 낫겠지. 그래도 난 멈추지 않고 있으니까 내 과거가 흐트러졌어도 난 일단 미래로 계속 걸어가고 있으니까 내일은 오늘보다 낫겠지, 그런 마음으로 버텨 왔어요. 연구자로서 물론 더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연구 내용을 잘 검토해서 문제를 해결해서 더 나은 연구를 해야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고요.

내가 어쩔 수 없는 문제로 내 가능성과 선택지가 삭제되는 순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오늘 힘들어도 내일은 더 낫겠지 하면서 버티는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산다는 건 어차피 고행이다. 내 삶만 유려하게 흐를 이유도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놓지 않으려고 했어요. 유학이나 외국에서 연구 생활이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여도 근본적으로는 물 설고 사람 설고 말 설은 곳에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애써 모른척하며  악착같이 오늘보다 내일이 낫겠지를 반복적으로 되뇌이며  버텨내는 것이겠지요. 굳이 제가 사용한 한 가지 방법을 공유하자면, 죽어라 운동을 하는 거였습니다. ‘왜 나한테 이런 일들이 생겨나지’라는 맘에 죽을 것같이 힘들어도 정말 죽어라 뛰면 살려고 그렇게 열심히 헐떡이며 숨을 쉬게 되더라구요. 그러면 비로소, 아, 그래도 살만하다, 이런 맘이 찾아 들더라구요.

Q. 미국에서 공부하고 연구하시면서, 실패에 관한 태도나 관점이 한국과는 좀 다르다고 느끼신 적이 있으신지요?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 보면, 미국이라고 실패 자체에 관대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실패에 대한 책임 소재를 더 분명히 가리기도 하구요.  다만 미국의 경우 일단 면적도 크지만 산업의 분야와 범위도 많고 크다 보니까 실패를 해도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의 절대량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실패가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그리고 무조건 일어나면 안되는 일이라기보다 실패해도 일어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걸 다들 인지하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결국은 사회의 재정적 규모와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어요.


Q. 찬용 님에게 실패란? oooo 이다! 

제가 생각하는 실패란 그냥 살면서 시간이 지나면 낫는 상처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상처가 너무 크면 평생 장애가 될 수도 있지만, 또 그 상처를 잘 보듬고 낫게 하면 시간이 지나고 삶의 교훈이 되기도 하겠지요. 완전히 실패의 기억에서 벗어나는 것은 힘든 것 같아요. 다만 실패를 많이 해 봤고, 그 실패를 통해 입었던 상처가 많다면 자기가 아팠던 그런 기억을 통해 타인의 아픔이라든가 실패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봐주고 공감해 줄 수 있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렇게 해서 잘 아물어 시간이 지나고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게 된다면, 그건 더 이상 내 삶을 옭아매는 실패는 아니기 때문에 삶의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과학기술인 모두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 

Q. 과학을 왜 좋아하게 되는지요? 과학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요? 

과학은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안경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잘 닦아서 맑게 써야 하는 부분은 당연하고요, 과학을 공부한다는 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의 보이지 않는 이면을 한 번 더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서 참 좋은 것 같습니다.

Q. ESC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 앞으로 ESC를 통해 함께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과학을 하면서 사회와 접점을 고민하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기회 자체를 갖는다는 게 저는 너무 만족스럽고, 그것만으로도 ESC에 적을 두고 참여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ESC에 계신 분들께 많이 배웠고요, 참 열심이신 분들이 많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앞으로 활동으로는 회원들을 좀 더 자주, 많이 연결시켜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꼭 실시간 소통이 아니더라도 서로를 인식하고 소통하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과학의 긍정적인 부분만 아니라 과학이나 과학자가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자본이나 권력 앞에서 달라지는 과학과 과학자의 모습에 대해서요.

# 당신이라서 궁금한 질문  

Q. 취미가 다양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최근 열중하시는 새로운 일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취미는 아니지만 최근 야간대학에서 컴퓨터 공학 학사 학위를 시작했습니다. 박사 하면서 바이오인포매틱스를 더 공부해보고 싶었는데요, 실제로 관련 프로젝트를 할 기회도 없었고 혼자 공부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체계적으로 공부해 보고 싶어 학위를 시작했어요. 힘들지만 재미있게 배우고 있고요, 향후 연구뿐만 아니라 과학과 사회를 연결하는 저만의 툴로서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싶습니다.

Q. 앞으로 활동과 특별한 계획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일단 현재 회사에서 이민과정을 서포팅 해 주는 것에 대한 계약기간이 3년이라서요. 이변이 없는 한 약 3년간 지금 회사에서 일할 생각이고요. 향후에는 연구와 교육 분야에서 국제기구 등에서 일하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난민이나 저개발 지역의, 교육 격차 문제 해결에도 관심을 갖고 있고요. 전공인 농업과 관련해서 나중에 남북교류가 가능해진다면 북한의 농업 연구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사실은 그 핑계로  개마고원에서 캠핑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삶이 될 것 같아요. 현재 하고 있는 일들, 그리고 쓰고 있는 논문들을  잘 갈무리해서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제 경력을 잘 만들어 놓으면 언젠가 기회가 왔을 때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서 말했듯이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낫겠지,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면서요. 


[숲터뷰 예고] ‘실패’란 주제로 다음에 소개할 과학기술인은 누구일까요? 과학자만 상상하시는 것은 아니시죠? 과학자 뿐만 아니라 공학자, 기술자, 과학기술학자, 과학기술정책 연구자, 대학원생, 대학생, 과학교사, 과학커뮤니케이터, 기업인, 작가, 언론인, 방송인, 활동가 등 과학기술분야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ESC회원 모든 분들이 대상입니다. 다음 숲터뷰가 만나게 될 인터뷰이도 기대해 주세요!😊

[숲터뷰 인터뷰이 추천]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고 전하고 싶은 ESC 과학기술인 추천을 받아요. 👉 추천하기


숲터뷰 운영진  
김재아(작가 및 기획자),  김효원(얼룩소 에디터), 박영민(교육공학자), 백정엽(과학커뮤니케이터 과즐러 & 뇌과학자), 이경선(환경정책연구 지리학 교수), 이기연(언어를 사랑하는 학예연구사), 장혜주(과학커뮤니케이터 그림장), 이강수(숲사이 관리인 퐝아재)


#숲터뷰 #숲터뷰_실패 #숲사이에서만난과기인


ESC 진행 (예정)행사 (참여하면 넓어지는 과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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