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 김기명
병원에서 엑스레이 사진을 안 찍어 본 사람이 있을까? 엑스레이는 내과뿐 아니라 정형외과 치과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병원에서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물리학 장비다.
19세기 말은 인류를 새로운 문명의 세계로 이끌 여러 대발견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엑스선과 전자, 방사능이 모두 비슷한 시기에 발견됐다. 1895년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이 발견한 엑스선은 처음부터 세상의 관심을 빨아들였다.
1912년 폰 라우에는 결정에 엑스선을 쪼이면 아름다운 패턴이 스크린에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엑스선도 빛과 같이 회절한다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이내 엑스선은 다양한 물질의 결정구조를 밝혀내는 데 활용되기 시작했다. 엑스선 결정학(X-ray crystallography)이란 학문이 크게 발전했고 이 기술의 최고 전문가였던 로잘린드 플랭클린(Rosalind Franklin)은 인류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사진인 ‘사진 51(Photo 51)’을 남겼다.
‘사진 51’이라 불리는 이 사진은 1952년 5월 킹스칼리지런던에서 로잘린드 플랭클린과 그녀의 박사과정 학생인 레이몬드 고슬링이 함께 촬영한 DNA의 X선 회절 이미지다. 프랭클린은 DNA 결정에 62시간 동안 엑스레이를 조사해 이 역사적인 ‘사진 51’을 얻었다. Photograph 51 (Franklin & Gosling, Nature, 1953)
왓슨과 클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낼 때 사용했던 바로 그 사진이다. 엑스선이 오늘날의 의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바로 이 DNA 결정 사진 한장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겠다.
엑스선이 의학에 가져다준 가장 큰 혁신은 아마도 의사가 환자의 몸속을 절개하지 않고도 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엑스선 영상은 신체 내부의 병변과 골절, 그리고 이물질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절대적인 진단 기술이 되었다. 특히 폐결핵과 같은 질병의 조기진단은 예방적 조치와 조기치료를 가능하게 해 인류의 사망률을 크게 줄이는 데 공헌했다.
아직까진 엑스선 모든 특성 활용 못해
이후 엑스선 영상은 컴퓨터를 만나 CT(Computed Tomography)로 발전했다. CT란 다각도로 찍은 엑스선 영상을 컴퓨터를 사용해 3차원으로 재구성하는 기술로 현대의학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영상진단장비가 되었다.
엑스선이 암과 같은 종양성 질병의 치료에 사용되고 있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이버나이프(CyberKnife)는 종양 부위를 정밀 조준해 고에너지 엑스선을 주입하므로써 수술을 하지 않고 종양을 치료할 수 있는 획기적인 신기술로 뇌 척추 폐 간 췌장 전립선 등 인체 내부에 발생한 종양 치료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혜택을 가져다준 엑스선은 사실 알고 보면 전자기파의 한 종류일 뿐이다. 엑스선은 보통 가속기나 전자총으로 가속된 전자가 금속 표적에 부딪히면서 발생한다. 전자는 금속 원자 속을 뚫고 지나가다가 원자핵에 근접하게 되면 원자핵의 강력한 양전하에 의해 끌려 급하게 진행 방향이 꺾이면서 소위 ‘제동복사(bremsstrahlung)’라 불리는 빛을 낸다. 이는 마치 지하 주차장에서 자동차의 핸들을 급격하게 꺾어 주행방향이 바뀔 때 바퀴에서 ‘찌지직’하는 소리 에너지가 발생하는 것과 흡사하다.
@삽화 김기명
때론 전자가 원자 속 전자를 때려 들뜬 전자가 다시 제위치로 돌아오면서 엑스선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게 나오는 엑스선은 표적으로 쓰이는 물질에 따라 다른 파장이 나오므로 이를 특성 엑스선이라 부른다. 결국 엑스선은 가속된 전자들이 원자 크기 정도의 표적을 만나 상호작용을 하면서 발생하는 것이니, 엑스선의 파장이 원자의 크기와 비슷한 옹스트롬(Å) 단위 정도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참고로 1 옹스트롬은 1억분의 1cm로 수소원자 크기 정도다.
엑스선은 인류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해왔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엑스선의 모든 특성이 다 활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의학에서는 엑스선의 투과성만을 사용해왔다. 즉 엑스선이 뼈와 살에 서로 다른 정도로 흡수된다는 사실만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엑스선 영상은 항상 흑백이다.
컬러 엑스레이 시대가 오고 있다
최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는 컬러 엑스레이 영상장치를 소개한 바 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이 선보인 3D 컬러 엑스레이 영상.
이 컬러 엑스레이는 투과된 엑스선의 휘도만 읽는 것이 아니고, 엑스선이 물질들과 반응하면서 잃어버리는 에너지 값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몸속의 각 부분마다 구성 물질의 성분에 따라 다른 엑스선 특성을 보여주게 되고, 이를 서로 다른 색깔로 표시하면 컬러 엑스레이 영상을 만들 수 있음을 시사한다. CERN은 이 기술을 최근 유럽의 몇몇 기업과 병원에 제공했고 현재 임상활용을 목표로 시험을 하고 있다. 기초과학과 의학이 함께 혁신을 만들어가는 모습이라 하겠다.
의과대학 입시 열풍과 의사정원 확대를 놓고 사회가 들끓고 있다. 돈벌이만 놓고 이공계와 의대 구성원들이 갈등하는 모습보다 과학자와 엔지니어, 의사가 모두 모여 새로운 혁신을 위해 협업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 ESC 회원)
내일신문과 ESC가 함께 과학칼럼 코너를 신설해 2023년 새해부터 매주 화요일 '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찾아갑니다. ESC 회원 과학자 칼럼니스트들의 맛깔난 '우리를 둘러싼 과학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사원문 링크 |
#ESC와함께하는과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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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 김기명
병원에서 엑스레이 사진을 안 찍어 본 사람이 있을까? 엑스레이는 내과뿐 아니라 정형외과 치과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병원에서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물리학 장비다.
19세기 말은 인류를 새로운 문명의 세계로 이끌 여러 대발견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엑스선과 전자, 방사능이 모두 비슷한 시기에 발견됐다. 1895년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이 발견한 엑스선은 처음부터 세상의 관심을 빨아들였다.
1912년 폰 라우에는 결정에 엑스선을 쪼이면 아름다운 패턴이 스크린에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엑스선도 빛과 같이 회절한다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이내 엑스선은 다양한 물질의 결정구조를 밝혀내는 데 활용되기 시작했다. 엑스선 결정학(X-ray crystallography)이란 학문이 크게 발전했고 이 기술의 최고 전문가였던 로잘린드 플랭클린(Rosalind Franklin)은 인류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사진인 ‘사진 51(Photo 51)’을 남겼다.
‘사진 51’이라 불리는 이 사진은 1952년 5월 킹스칼리지런던에서 로잘린드 플랭클린과 그녀의 박사과정 학생인 레이몬드 고슬링이 함께 촬영한 DNA의 X선 회절 이미지다. 프랭클린은 DNA 결정에 62시간 동안 엑스레이를 조사해 이 역사적인 ‘사진 51’을 얻었다. Photograph 51 (Franklin & Gosling, Nature, 1953)
왓슨과 클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낼 때 사용했던 바로 그 사진이다. 엑스선이 오늘날의 의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바로 이 DNA 결정 사진 한장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겠다.
엑스선이 의학에 가져다준 가장 큰 혁신은 아마도 의사가 환자의 몸속을 절개하지 않고도 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엑스선 영상은 신체 내부의 병변과 골절, 그리고 이물질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절대적인 진단 기술이 되었다. 특히 폐결핵과 같은 질병의 조기진단은 예방적 조치와 조기치료를 가능하게 해 인류의 사망률을 크게 줄이는 데 공헌했다.
아직까진 엑스선 모든 특성 활용 못해
이후 엑스선 영상은 컴퓨터를 만나 CT(Computed Tomography)로 발전했다. CT란 다각도로 찍은 엑스선 영상을 컴퓨터를 사용해 3차원으로 재구성하는 기술로 현대의학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영상진단장비가 되었다.
엑스선이 암과 같은 종양성 질병의 치료에 사용되고 있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이버나이프(CyberKnife)는 종양 부위를 정밀 조준해 고에너지 엑스선을 주입하므로써 수술을 하지 않고 종양을 치료할 수 있는 획기적인 신기술로 뇌 척추 폐 간 췌장 전립선 등 인체 내부에 발생한 종양 치료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혜택을 가져다준 엑스선은 사실 알고 보면 전자기파의 한 종류일 뿐이다. 엑스선은 보통 가속기나 전자총으로 가속된 전자가 금속 표적에 부딪히면서 발생한다. 전자는 금속 원자 속을 뚫고 지나가다가 원자핵에 근접하게 되면 원자핵의 강력한 양전하에 의해 끌려 급하게 진행 방향이 꺾이면서 소위 ‘제동복사(bremsstrahlung)’라 불리는 빛을 낸다. 이는 마치 지하 주차장에서 자동차의 핸들을 급격하게 꺾어 주행방향이 바뀔 때 바퀴에서 ‘찌지직’하는 소리 에너지가 발생하는 것과 흡사하다.
@삽화 김기명
때론 전자가 원자 속 전자를 때려 들뜬 전자가 다시 제위치로 돌아오면서 엑스선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게 나오는 엑스선은 표적으로 쓰이는 물질에 따라 다른 파장이 나오므로 이를 특성 엑스선이라 부른다. 결국 엑스선은 가속된 전자들이 원자 크기 정도의 표적을 만나 상호작용을 하면서 발생하는 것이니, 엑스선의 파장이 원자의 크기와 비슷한 옹스트롬(Å) 단위 정도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참고로 1 옹스트롬은 1억분의 1cm로 수소원자 크기 정도다.
엑스선은 인류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해왔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엑스선의 모든 특성이 다 활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의학에서는 엑스선의 투과성만을 사용해왔다. 즉 엑스선이 뼈와 살에 서로 다른 정도로 흡수된다는 사실만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엑스선 영상은 항상 흑백이다.
컬러 엑스레이 시대가 오고 있다
최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는 컬러 엑스레이 영상장치를 소개한 바 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이 선보인 3D 컬러 엑스레이 영상.
이 컬러 엑스레이는 투과된 엑스선의 휘도만 읽는 것이 아니고, 엑스선이 물질들과 반응하면서 잃어버리는 에너지 값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몸속의 각 부분마다 구성 물질의 성분에 따라 다른 엑스선 특성을 보여주게 되고, 이를 서로 다른 색깔로 표시하면 컬러 엑스레이 영상을 만들 수 있음을 시사한다. CERN은 이 기술을 최근 유럽의 몇몇 기업과 병원에 제공했고 현재 임상활용을 목표로 시험을 하고 있다. 기초과학과 의학이 함께 혁신을 만들어가는 모습이라 하겠다.
의과대학 입시 열풍과 의사정원 확대를 놓고 사회가 들끓고 있다. 돈벌이만 놓고 이공계와 의대 구성원들이 갈등하는 모습보다 과학자와 엔지니어, 의사가 모두 모여 새로운 혁신을 위해 협업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 ESC 회원)
내일신문과 ESC가 함께 과학칼럼 코너를 신설해 2023년 새해부터 매주 화요일 '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찾아갑니다. ESC 회원 과학자 칼럼니스트들의 맛깔난 '우리를 둘러싼 과학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사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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