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 : Unsplash의 Chang Duong
[혼자가 편한 아이, 모임을 시작하다 - 변리사 시험 스터디]
고백하자면 사실 저는 혼자가 편한 아이였습니다. 이런 습성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당시 저의 담임선생님은 조별 활동을 통해 협동 능력을 키워 주려 애쓰셨고, 모든 학생이 역할을 맡도록 했습니다. 조장은 이끎이였고, 기록이, 칭찬이, 발표를 맡은 나눔이 등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그런 과정이 비효율적이라고 느꼈습니다. 각자 종이에 써서 제출하면 빨리 끝나는데 말이죠. 거기에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어색했고, 조별 활동이 재미있지도 않았습니다. 제게 누군가와 ‘함께’하는 건 귀찮은 일이었습니다.
이런 제가 ‘같이’의 가치를 발견한 건, 대학 졸업 후 변리사 시험을 준비할 때였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자기 주도적 학습 습관이 잘 잡혀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학교 시간표로 채워지는 기본적인 루틴이 있었고, 제가 스스로 채워야 하는 시간은 그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했기 때문에, 어떤 과목을 어느 만큼 공부를 해야 할지 역시 정해져 있었습니다. 수험 생활을 하면서는 정말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공백의 시간을 스스로 채워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루틴을 유지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졌고,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했던 저는 처음으로 스터디에 참여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미 진행되고 있거나 다른 사람들이 모집하는 스터디는 어딘가 저와 핏(fit)이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접 스터디를 만들기로 합니다. 주 1회 모여 시간에 맞춰 기출 문제를 풀고 채점하는 스터디였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시험 준비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면서도 적은 부담으로 모여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활동이었습니다. 많은 것을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매주 자리한 정기적인 일정 덕분에 수월하게 고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2차 시험의 관문을 넘지 못하고 수험 생활을 접었지만, 처음으로 ‘같이’의 가치를 발견한,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의 뜻을 이해한 경험이었습니다.
[모임에 재미를 붙이다 - 100일 글쓰기]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모임의 필요를 알게 되었다면, 모임에 재미를 붙이게 된 계기로는 ‘글쓰기 모임’을 꼽겠습니다. 변리사 시험을 그만두고 나서는 하고 싶었던 일들을 모두 해보기로 마음먹고 많은 일들을 벌였습니다. ‘함께’의 힘을 알게 된 터라 스터디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스위스로 교환학생으로 가서 제대로 익히지 못한 프랑스어, 앞으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해 보이는 프로그래밍을 스터디를 꾸려 공부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숭례문학당에서 운영하는 ‘100일 글쓰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100일 글쓰기’는 100일 동안 매일 한 편의 글을 쓰는 강좌입니다. 사실 강좌라고 부르지만, 상당한 도전입니다. 어릴 적부터 표현하기 좋아해서 말하고 노래하기를 즐겼지만, 쓰기에는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글쓰기 능력을 끌어올릴 기회라고 생각해 기꺼이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15만원이라는 수강료가 부담되어 고민하다가 글쓰기에 관심이 있을 법한 지인들이 떠올랐고, 이들을 모으면 ‘100일 글쓰기’를 진행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모임의 이름은 ‘100일 숙성 레몬 녹차’였습니다. 첫 오프라인 모임에서 다 같이 마신 음료의 이름이 ‘레몬 녹차’였고, 여기에 착안하여 이름을 지었습니다. 주제도 형식도 분량도 자유였지만, 매주 토요일에는 공통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 글마다 모임원들의 색깔이 드러났고, 공통 주제의 글에서는 다양성이 더욱 부각되었습니다. 동일한 주제라도 생각하는 바가 모두 달랐습니다. 100일 동안 매일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았지만, 함께 했기에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매일 매일의 성취감과 더불어 모임원들의 다채로움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다른 모임원이 달아주는 댓글 덕분에 생각이 확장되기도 했습니다. 모임이 끝난 뒤에는 원하는 사람들끼리 글 모음집을 냈습니다. 레몬편과 녹차편으로 나누어, 레몬편에는 각자 고른 개별 글 세 편을 싣고 녹차편에는 공통 주제의 글을 실었습니다.
18년도 여름 ‘100일 숙성 레몬 녹차’를 시작으로, 19년도 ‘작당쌀롱’, 20년도 ‘여름 바람’, 21년도 ‘2인 무자본 소창업’까지 총 네 번의 100일 글쓰기를 진행했습니다. 100일 글쓰기를 끝마치고 나면, ‘내년에는 절대 이 고생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6월이 되고 여름 바람이 불어오면 어김없이 글 모임을 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돌아보면 회차가 거듭되면서 100일 글쓰기는 100개의 글쓰기로 변모해 갔습니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목표한 바를 모두 이루었다는 데에 의의를 둡니다. 중간중간 부담이 적은 글 모임도 진행했습니다. 18년도 겨울에는 ‘겨우내 방글방글’, 20년도에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나열하고 보니, 글 모임도 연속성이 없었을 뿐이지 책 모임만큼이나 오랫동안 그리고 꾸준히 진행해 왔네요. 글 모임은 글을 올리기 위해 네이버에 비공개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책 모임보다는 기록이 잘 남아있습니다.
이 글을 빌어, 저의 모임에 항상 함께해 주고, 탁월한 작명 센스로 찰떡같은 모임명을 지어주는 제 친구 지현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제가 운영한 대부분의 모임 이름을 지어주었고, 현재 운영하는 책 모임의 이름 '해가 지지 않는 책방', 줄여서 해지책 역시 지현이의 작품입니다.
한 가지 소식을 전해드리자면, 해지책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습니다. @haeji_bookclub 저번 글에서 소개해 드린 노션보다 접근성과 가시성이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그동안 읽은 책들의 평점과 한줄평을 올려두었습니다. 평점은 모임원들이 매긴 점수의 평균으로 계산했습니다. 앞으로 모임에서 읽는 책들도 업데이트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해가 지지 않는 책방 인스타그램에서 발췌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제가 여러 모임을 운영하면서 얻은 꿀팁과 교훈을 몇 가지 나누겠습니다.
#아무튼책모임
노다해 | 복잡계 연구의 대표적인 대중서 <세상 물정의 물리학>을 읽고 통계물리학 대학원에 진학했으나, 위대한 여정은 척척석사로 마무리할 예정이다(23년도 8월 졸업). 복잡계 '연결'망을 연구한 만큼 '연결'하는 사람이 되어보려 한다. 과학과 대중 사이에, 영어와 한국어 사이에, 사람과 사이에 다리를 놓고 싶다.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관심사는 그 밖의 모든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읽고 쓰는 재미에 빠져 책 모임과 글 모임을 오랫동안 꾸려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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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Unsplash의 Chang Duong
[혼자가 편한 아이, 모임을 시작하다 - 변리사 시험 스터디]
고백하자면 사실 저는 혼자가 편한 아이였습니다. 이런 습성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당시 저의 담임선생님은 조별 활동을 통해 협동 능력을 키워 주려 애쓰셨고, 모든 학생이 역할을 맡도록 했습니다. 조장은 이끎이였고, 기록이, 칭찬이, 발표를 맡은 나눔이 등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그런 과정이 비효율적이라고 느꼈습니다. 각자 종이에 써서 제출하면 빨리 끝나는데 말이죠. 거기에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어색했고, 조별 활동이 재미있지도 않았습니다. 제게 누군가와 ‘함께’하는 건 귀찮은 일이었습니다.
이런 제가 ‘같이’의 가치를 발견한 건, 대학 졸업 후 변리사 시험을 준비할 때였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자기 주도적 학습 습관이 잘 잡혀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학교 시간표로 채워지는 기본적인 루틴이 있었고, 제가 스스로 채워야 하는 시간은 그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했기 때문에, 어떤 과목을 어느 만큼 공부를 해야 할지 역시 정해져 있었습니다. 수험 생활을 하면서는 정말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공백의 시간을 스스로 채워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루틴을 유지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졌고,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했던 저는 처음으로 스터디에 참여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미 진행되고 있거나 다른 사람들이 모집하는 스터디는 어딘가 저와 핏(fit)이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접 스터디를 만들기로 합니다. 주 1회 모여 시간에 맞춰 기출 문제를 풀고 채점하는 스터디였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시험 준비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면서도 적은 부담으로 모여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활동이었습니다. 많은 것을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매주 자리한 정기적인 일정 덕분에 수월하게 고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2차 시험의 관문을 넘지 못하고 수험 생활을 접었지만, 처음으로 ‘같이’의 가치를 발견한,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의 뜻을 이해한 경험이었습니다.
[모임에 재미를 붙이다 - 100일 글쓰기]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모임의 필요를 알게 되었다면, 모임에 재미를 붙이게 된 계기로는 ‘글쓰기 모임’을 꼽겠습니다. 변리사 시험을 그만두고 나서는 하고 싶었던 일들을 모두 해보기로 마음먹고 많은 일들을 벌였습니다. ‘함께’의 힘을 알게 된 터라 스터디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스위스로 교환학생으로 가서 제대로 익히지 못한 프랑스어, 앞으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해 보이는 프로그래밍을 스터디를 꾸려 공부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숭례문학당에서 운영하는 ‘100일 글쓰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100일 글쓰기’는 100일 동안 매일 한 편의 글을 쓰는 강좌입니다. 사실 강좌라고 부르지만, 상당한 도전입니다. 어릴 적부터 표현하기 좋아해서 말하고 노래하기를 즐겼지만, 쓰기에는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글쓰기 능력을 끌어올릴 기회라고 생각해 기꺼이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15만원이라는 수강료가 부담되어 고민하다가 글쓰기에 관심이 있을 법한 지인들이 떠올랐고, 이들을 모으면 ‘100일 글쓰기’를 진행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모임의 이름은 ‘100일 숙성 레몬 녹차’였습니다. 첫 오프라인 모임에서 다 같이 마신 음료의 이름이 ‘레몬 녹차’였고, 여기에 착안하여 이름을 지었습니다. 주제도 형식도 분량도 자유였지만, 매주 토요일에는 공통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 글마다 모임원들의 색깔이 드러났고, 공통 주제의 글에서는 다양성이 더욱 부각되었습니다. 동일한 주제라도 생각하는 바가 모두 달랐습니다. 100일 동안 매일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았지만, 함께 했기에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매일 매일의 성취감과 더불어 모임원들의 다채로움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다른 모임원이 달아주는 댓글 덕분에 생각이 확장되기도 했습니다. 모임이 끝난 뒤에는 원하는 사람들끼리 글 모음집을 냈습니다. 레몬편과 녹차편으로 나누어, 레몬편에는 각자 고른 개별 글 세 편을 싣고 녹차편에는 공통 주제의 글을 실었습니다.
18년도 여름 ‘100일 숙성 레몬 녹차’를 시작으로, 19년도 ‘작당쌀롱’, 20년도 ‘여름 바람’, 21년도 ‘2인 무자본 소창업’까지 총 네 번의 100일 글쓰기를 진행했습니다. 100일 글쓰기를 끝마치고 나면, ‘내년에는 절대 이 고생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6월이 되고 여름 바람이 불어오면 어김없이 글 모임을 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돌아보면 회차가 거듭되면서 100일 글쓰기는 100개의 글쓰기로 변모해 갔습니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목표한 바를 모두 이루었다는 데에 의의를 둡니다. 중간중간 부담이 적은 글 모임도 진행했습니다. 18년도 겨울에는 ‘겨우내 방글방글’, 20년도에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나열하고 보니, 글 모임도 연속성이 없었을 뿐이지 책 모임만큼이나 오랫동안 그리고 꾸준히 진행해 왔네요. 글 모임은 글을 올리기 위해 네이버에 비공개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책 모임보다는 기록이 잘 남아있습니다.
이 글을 빌어, 저의 모임에 항상 함께해 주고, 탁월한 작명 센스로 찰떡같은 모임명을 지어주는 제 친구 지현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제가 운영한 대부분의 모임 이름을 지어주었고, 현재 운영하는 책 모임의 이름 '해가 지지 않는 책방', 줄여서 해지책 역시 지현이의 작품입니다.
한 가지 소식을 전해드리자면, 해지책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습니다. @haeji_bookclub 저번 글에서 소개해 드린 노션보다 접근성과 가시성이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그동안 읽은 책들의 평점과 한줄평을 올려두었습니다. 평점은 모임원들이 매긴 점수의 평균으로 계산했습니다. 앞으로 모임에서 읽는 책들도 업데이트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해가 지지 않는 책방 인스타그램에서 발췌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제가 여러 모임을 운영하면서 얻은 꿀팁과 교훈을 몇 가지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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