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고생물학도의 이야기 #5] 여성 고생물학자, 알려지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 3) 2차 세계대전과 청각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고생물학자

이수빈
2023-05-22


인류의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산업혁명의 시기인 19세기를 지나 20세기에 들어서서 인류의 역사에는 2번의 큰 전쟁이 있었습니다. 전쟁 자체는 고대서부터 계속 있었지만 20세기 넘어서서 발생한 2번의 세계대전은 인류의 역사에 여러 가지 획을 남겼지요. 특히 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에 2023년 현재까지 여러 흔적을 남겨놓았습니다. 이 큰 전쟁이 진행되던 시기에 많은 남성이 전쟁터에 나가 싸웠습니다. 그리고 많은 여성이 공장에 나가서 군수물자를 생산하거나 심지어 소련과 같은 몇몇 국가에서는 전쟁터에 남성과 함께 참전해서 적과 싸우기도 하였습니다. 이 시기에도 여성 고생물학자들이 있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독일에서 활동하다가 나치 정권의 박해를 피해서 미국으로 이민가서 여러 업적을 남긴 위대한 여성 고생물학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았습니다.

 

(1). 틸리 에딩거


고생물의 두뇌를 연구하는 학문을 고생물신경학(Paleoneurology)이라고 합니다. 대략 100여 년 전 즈음인 1920년대에 이 고생물신경학 연구사에서 공헌을 한 위대한 고생물학자가 있었지요. 틸리 에딩거(Tilly Edinger)라는 고생물학자였습니다.

 

@ 틸리 에딩거의 사진. 
(출처-https://en.wikipedia.org/wiki/Tilly_Edinger)


틸리 에딩거는 1897년생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루드윙 에딩거(Ludwig Edinger)는 신경과학자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신경과학 재단을 설립하였을 정도로 명망이 있고 부유한 과학자였습니다. 그 덕분에 틸리 에딩거는 어릴 적부터 신경과학이라는 분야에 매우 친숙하였습니다. 그녀는 1912년에 오스트리아의 고생물학자 오테니오 아벨이 저술한 고생물학(Palaeobiologie)이라는 책을 읽고 고생물학 연구에 뜻을 품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틸리의 부모님은 그녀가 과학 연구를 하는 것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듯 합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여성은 과학연구를 하는 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였고 그녀의 어머니 안나 에딩거-골드슈미츠 또한 그녀의 연구를 그저 취미 정도로만 판단하였습니다. 다행히 그럼에도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서 틸리 에딩거가 자신의 연구경력을 쌓을 수 있게 도움을 주기는 하였다고 합니다. 1921년에 틸리는 마침내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트라이아스기 시기 해양 파충류인 노토사우루스의 두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 노토사우루스의 모습.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Nothosaurus_BW.jpg)


(2). 박물관에서 근무


틸리 에딩거는 박사학위 취득 후에도 한동안 연구보조로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근무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27년에 직장을 젠켄베르크 자연사 박물관으로 옮기게 되었지요. 1929년에 젠켄베르크 자연사 박물관에서 그녀는 화석 생물의 두뇌를 연구한 성과를 Die Fossilen Gehirne (화석 두뇌)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습니다. 이 연구는 포유류의 두개골에 남아있는 두뇌의 흔적을 연구한 것이었지요. 그녀는 두개골의 내부 모형 (endocast)을 이용하여 뇌실(두개골에서 두뇌가 들어가는 공간)의 내부구조를 연구하는 방식으로 화석 생물의 두뇌를 연구하였습니다. 그녀가 화석 생물의 두뇌를 연구하기 전에는 화석 생물의 두뇌 연구는 주로 뇌실의 크기를 측정하거나 하는 일부 제한된 연구만 이루어졌으나, 어릴 적 신경과학을 가까이하였던 경험을 살려서 그녀는 두개골 내부 모형을 이용하여서 두뇌의 감각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3). 나치정권과 미국으로 이주


1933년에 들어서서 틸리 에딩거는 그녀의 삶에서 아주 큰 난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나치가 독일의 정권을 잡은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가정은 유대인 집안이었고 따라서 나치의 박해 대상에 포함되었던 것이었지요! 1938년까지는 그녀는 박물관의 관장 루돌프 리히터(Rudolf Richter)의 보호 아래에서 박물관에서 비밀리에 일할수 있었으나, 1938년 나치독일의 유대인 크리스탈나흐트 대학살 (1938년 11월 9일 밤에 나치 대원들이 독일 전역의 유대인 상점을 약탈하고 방화하고 유대인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나고 틸리의 오빠도 나치의 유대인 학살로 인해 살해당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그녀는 독일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민을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1939년 5월에 그녀는 프랑크푸르트의 필립 슈워츠(Phillipp Schwartz)교수의 도움을 받아 런던으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의학 교과서 번역일을 하였는데, 어릴 적에 가정교사에게서 영어와 프랑스어로 교육을 배운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1940년 5월 11일에 틸리 에딩거는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녀는 미국에서 하버드 대학교에서 알프레드 로머 박사의 도움을 받아서 일을 하게 되었지요. 하버드 대학교에서 일하면서 그녀는 생물의 신체가 거대해지는 것에 두뇌의 전두엽의 크기가 영향을 미친다는 자신의 가설에 대한 실험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두뇌의 전두엽에서 성장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생물의 크기가 결정되는데, 전두엽의 크기가 클수록 더 많은 호르몬이 분비되어 크기가 더 커진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그렇게 하버드 대학교에서, 그리고 1945년에 교수로 재직하였던 웰즐리 대학교(Wellesley College)에서 포유류, 파충류, 공룡등 여러 생물의 두뇌를 연구하면서 여러 업적을 남겼습니다.


(4). 여러 명예와 사망


틸리 에딩거는 살면서 여러 명예를 얻었습니다. 1950년에는 그녀가 하버드를 떠나 교수로 재임하였던 웰즐리 대학교의 명예박사가 되었습니다. 1957년에는 그녀가 독일에서 연구 보조일을 하였던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도 명예박사를 얻게 되었지요. 1963년에서 1964년에 에딩거는 척추고생물학회 회장직을 재임하기도 하였습니다. 존 사이먼 구겐하임 기념재단(John Simon Guggenheim Memorial Foundation), 미국 대학 여성 협회 (American Association of University Women)등 여러 재단에서 장학금을 받기도 하였지요.


그녀는 은퇴 후에도 저술 활동 및 조언가로 활동을 하다가 1967년 5월 27일에 자동차와 부딪히는 사고를 당하여 머리에 큰 부상을 당해 향년 69세로 사망하였습니다. 그녀의 동료들은 그녀가 평생동안 이루었던 여러 연구를 종합하여 1973년에 고신경학 1804-1966: 주석이 있는 참고문헌 (Paleoneurology 1804–196: An Annotated Bibliography)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하였습니다. 


@ 틸리 에딩거가 모아온 고신경학에 대한 자료들을 출간한 책. 이 책은 지금도 아마존, Springer Link에서 판매되고 있다.

(출처- https://link.springer.com/book/10.1007/978-3-642-66029-0)

 

@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틸리 에딩거의 무덤. 그녀의 유해는 아버지 루드윙 에딩거와 어머니 안나 에딩거-골드슈미츠와 함께 안장되었다.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Tilly_Edinger)


고생물의 뇌신경 연구에 있어 큰 업적을 남긴 고생물학자 틸리 에딩거. 그녀는 사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십대에 청력에 이상이 생겼고 성인이 되어서는 보청기 없이는 아예 소리를 들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장애가 있음에도 그녀는 과학사에 위대한 업적을 이룬 것이었습니다. 정말 위대한 과학자입니다. 그녀의 친구이자 고생물학자인 조지 게이로드 심프슨(George Gaylord Simpson)은 그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습니다.


"그녀는 전 세계의 최고의 연구과학자이다. 그녀는 멸종한 생물의 뇌와 신경계, 두뇌의 진화에 대해서 뛰어난 특기로 어디에서든지 유명하였다. 그녀는 그 분야에서 매우 출중하며 고생물신경학이라는 놀라운 가치를 지닌 중요한 학문으로 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자료 출처


#고생물학도의이야기,  #과학기술속젠더




이수빈
공주교육대학교에서 화석 연구로 석사 졸업을 하고 해외로 박사 유학을 가기 위해서 준비 중 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화석을 연구 중입니다. 동시에 고생물학이란 학문을 대중에게 소개하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칼럼을 연재하고 대중 강연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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