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창조과학을 위한 변명 #3] 창조과학은 무엇을 증명하려 하는가?

크프우프크(Kfwfk)
2023-04-13

지난 연재글(#2)을 정근모 박사의 신앙관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했었죠. 정근모 박사에게 신앙이란 항상 과학보다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창조과학자들과 크리스천 과학자들에게 신앙이란 과학보다 중요한 것이며,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타협’이라는 것은 양측에서 어떻게 이해되는지에 대해서는 오묘한 지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창조과학자는 크리스천 과학자가, 크리스천 과학자는 창조과학자가 과학을 맹신하고 있다고 서로 비판하거든요. 서로가 과학을 맹신하고 있다고 비판하다니 조금 아이러니하지만, 찬찬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크리스천 과학자가 과학을 맹신하고 있다는 창조과학자의 주장은 일견 이해가 됩니다. 크리스천 과학자가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든 간에, 우주론, 진화론, 지질학 등 현대 과학의 성과를 부정하지 않으니까요. 성경의 기술을 최우선시하는 창조과학자들이 이를 ‘타협’이라고 규정하면서 분개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창조과학자가 과학을 맹신한다는 비판은 맥락이 다릅니다. 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성경을 과학으로 증명하려 한다”는 비판입니다. 제가 신학을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창조과학을 비판하는 신학자들과 크리스천 과학자들의 글은 대체로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성경은 그 자체로 진리이며 증명할 필요가 없는데, 굳이 과학적 방법론에 기댄다는 것은 과학적 지식이 성경의 진리보다 더 신뢰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성경을 모든 지식의 꼭대기에 올려놓았다고 자부하는 창조과학자들이 이런 비판을 듣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펄쩍 뛰면서 이렇게 말하겠죠. 

  

성경의 기술은 자명한 진리이며, 성경에는 어떠한 과학적·역사적 오류도 없다. 따라서 성경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필요’가 없다.


아니, 성경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필요가 없다니요? 그럼 도대체 창조과학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2017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 박성진 포항공대 교수] 

많은 독자분들이 기억하시겠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이었던 2017년에 신설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 창조과학자인 박성진 포항공대 교수가 지명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12년에 있었던 ‘교진추 사태’ 이후로 5년 만에 창조과학계가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받는 계기가 되었죠. ('교진추 사태'는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라는 개신교 단체가 교과서에서 시조새 관련 내용을 빼라고 청원을 냈고, 거의 성공할 뻔했던 사건입니다. 흥미로운 사건이지만, 뉴스 기사만 검색해도 많은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정리하지는 않겠습니다.) 창조과학계에 대해 갑작스레 쏟아지는 비판에 당황한 한국창조과학회는 학회 차원의 대응으로 <창조과학회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냈습니다. 이 입장문의 세 번째 항목을 보시죠.


“한국창조과학회는 성경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에 의한 창조의 결과들이 과학적으로도 사실임을 변증할 뿐입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하지 않고, 과학적으로 변증을 할 뿐이다. 이 말이 이해가 되시나요? 여기서 잠깐 '변증'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에게 '변증'이라고 하면 헤겔의 변증법이나 정반합 같은 것들이 떠오를 텐데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변증은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영어단어부터가 달라요. 전자는 dialectic이라고 하고, 후자는 apology라고 합니다. 한 기독교 매체에 실린 인터뷰 기사(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49617)를 인용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 변증이란 무엇인가요.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전도가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초대이며, 변증은 이 초대의 기반을 다지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오스 기니스는 무언가의 매력을 설득하는 모든 활동을 변증으로 봅니다.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모습을 계속 올리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자신에 대한 변증이라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 변증은 기독교의 매력을 설득하는 일입니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해서 다시 정의하자면, 변증은 기독교를 믿을 좋은 이유를 알려주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사이에는 수많은 장벽이 있습니다. 이 장벽은 교회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나 인식일 수도 있고, 좋지 못한 경험이나 이성적 의문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변증은 이 장벽을 넘어갈 수 있도록 다리를 만드는 일입니다. 이 작업 없이 무작정 이쪽으로 건너오라고 말하면, 상대는 벽에 부딪혀 어려움을 느낄 것입니다."

[Christian apologetics로 검색해보니 이런 재밌는 이미지도 나오더군요. 

기독교인들이 삼위일체(trinity)를 변증할 때 자주 사용하는 다이어그램이라고 합니다.]


위 인터뷰를 포함해서 변증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여러 발언들을 종합해보면(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검색에 의지할 수밖에 없네요) 기독교 변증이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외부의 공격과 내부의 의심을 방어하는 작업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이를 다시 한국창조과학회의 입장문과 합쳐보면, 창조과학이란 '성경이 과학적으로 사실이 아니라는 기독교 내외부의 공격을 방어하는 어떤 지식 체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여러분들은 이 주장("증명과 변증은 달라!")이 납득이 가시나요?


“성경을 과학으로 증명하려 한다”는 비판은 사실 신학적 배경 지식이 없더라도 창조과학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익숙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창조과학을 반대하는 신학자들이 제기하는 이 질문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히 똑같은 문장으로 과학계에서도 제기되거든요. 물론 맥락은 다르지요. 주류 과학계에서는 성경을 과학으로 증명하려는 창조과학의 시도가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그 결론에 증거를 끼워 맞추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올바른'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이비과학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창조과학자들은 이런 비판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까요? 다음 편에서는 이에 대해서 다뤄보겠습니다. 미리 힌트를 드리자면, 창조과학자들은 우리가 흔히 인터넷 기사, 페이스북 댓글, 블로그 댓글 등에서 볼 수 있는 창조과학 옹호론자들의 논리보다는 정교한, 나름의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 연재 글에 사실과 다른 점이 있거나 창조과학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댓글 또는 ojunjang@gmail.com으로 알려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크프우프크(Kfwfk): 공대를 졸업했고, 출판사에서 과학책 편집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이상한 사람을 볼 때마다 다가가서 말을 거는 상상을 합니다.


#창조과학을위한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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