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평등한 여성의 몸을 말한다 #2] 여성, 제 2의 남성이 아닌 또 다른 신체

노다해
2023-01-18


[평등한 여성의 몸을 말한다 #2]  여성, 제 2의 남성이 아닌 또 다른 신체


2021년 10월 심한 복통으로 응급실을 찾았다. CT를 찍어보니 난소에서 발생한 출혈로 내장과 생식기관 등을 감싸는 복강에 혈액이 차 있었다. 당시 인과성은 인정되지 않았지만, 백신 접종 후 부정 출혈 또는 월경 패턴의 변화를 경험하는 사례들이 온라인에 공유되고 있었다.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월경이 예정보다 늦어져 백신 부작용을 의심했다. 하지만 산부인과 의사는 출혈이 부작용일 가능성은 작다고 했다. 더불어 월경이 2~3개월 미뤄지는 건 스트레스로도 가능하고 큰 문제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코로나19 백신은 개발이 신속했던 만큼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높았다. 이에 질병관리청은 2021년 2월 26일 접종을 시작하며 백신 이상 반응을 수집했다. 하지만 ‘월경장애’ 선택지는 8개월이 지난 10월이 되어서야 생겨났다. 온라인에서 여성들의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실시한 추적 보고에도 처음에는 월경장애 항목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 일리노이대 의료인류학과 케이트 클랜시 교수가 올린 트윗을 계기로 모인 부정 출혈 및 월경불순 사례만 14만 건에 이르렀다. CDC는 자체 조사에 착수했고, 미국국립보건원(NIH)은 코로나 백신과 월경불순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사례가 모였는데, 왜 임상 단계에서는 이런 점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임상 실험 참여자들에게 월경 패턴 변화에 대한 질문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의학계의 오래된 풍토가 자리 잡고 있다. 근대 해부학이 출발한 17세기부터 70kg의 성인 백인 남성은 인간의 표준형으로 간주되었다. 생식기관을 제외하고 여성의 몸은 남성의 몸과 다르지 않게 여겨졌다. 이러한 전제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는 사례는 아주 많다. 한 예로 1980년대에 이뤄진 한 연구는 아스피린이 심장마비를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남성만을 대상으로 했다. 1990년대에 여성에게 같은 연구를 수행하자 심장마비 위험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1992년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약의 인가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약물 시험에서 여성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고, 설사 여성이 다수 포함되어 있더라도 결과를 해석할 때 성별에 따른 차이가 고려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여 1993년 미국에서는 NIH가 지원하는 연구는 임상 연구에 여성과 소수 인종을 포함할 것을 요구하는 법이 통과되었다.


굳어진 의학계의 시스템과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1997년에서 2000년까지 FDA에서 판매를 중단시킨 약물 10개 중 8개는 여성에게 더욱 유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중 네 개는 여성에게 더 자주 처방되어 부작용 사례가 더 많이 보고된 약물이고, 나머지 네 개는 여성과 남성에게 동일하게 처방되었지만, 여성에게 더욱 해로운 영향을 미친 약물이었다. 후자는 여성과 남성의 생리학적 차이가 원인이 되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2014년에 발표된 노스웨스턴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동물실험의 22%가 성별을 명시하지 않았고, 명시한 실험 중 80%는 수컷만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NIH의 법이 통과된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사람이 아닌 동물을 활용하는 전임상 단계부터 설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코로나19 백신 사태를 보면 그리 많이 변하지는 않은 것 같다.


2022년도 7월 미국 세인트루이스워싱턴대와 일리노이대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절반에 가까운 여성들이 백신 접종 후 월경 이상을 경험했다. 2022년도 8월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코로나19백신안전성위원회는 빈발 월경 및 출혈, 이상자궁출혈 발생 위험이 코로나19 예방접종 이후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으며 인과관계가 있음을 수용할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백신 접종을 시작한지 약 1년 6개월이 지나서야 이뤄진 발표이다.


여성과 남성의 신체가 다르다는 증거는 나날이 쌓이고 있다. 앞으로는 성별에 따른 영향이 충분히 탐구되어 여성이 제 2의 남성이 아닌 또 다른 신체로 여겨지기를 기대한다.


* 본 글은 ESC 2022 과학적 글쓰기 과정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노다해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입니다. 통계물리학의 관점에서 복잡계를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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