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 양성자 치료와 중입자 치료 어떻게 다른가

박인규
202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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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이나 약물로 치료가 되지 않는 암 환자에게 방사선 치료는 마지막으로 기대볼 수 있는 희망이다. 그런데 막상 방사선 치료를 추천받았을 땐 무엇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방사선을 활용한 종양치료법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일반인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방사선 치료로는 감마나이프와 사이버나이프를 사용한 시술이 있다. 감마나이프는 이름 그대로 감마선을 사용하고 사이버나이프는 엑스선을 사용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에너지의 차이만 있을 뿐 감마선이나 엑스선이나 둘 다 빛인 건 마찬가지다. 빛의 에너지가 높아 가시광선과 달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알고 보면 이들은 모두 전자기파다.


전자기파는 요동치는 전기장과 자기장으로 전자를 움직이게 한다. 가정용 전자레인지에 쓰이는 낮은 에너지의 전자기파는 전자를 진동시켜 열을 일으키지만 엑스선과 감마선과 같이 큰 에너지를 가진 전자기파는 전자를 원자 밖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우리 몸은 모두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는 사실상 전자구름 덩어리라 할 수 있다. 물론 원자 속에는 핵이 들어 있지만, 핵은 정말로 작은 공간만 차지할 뿐이다. 그러니 전자기파가 우리 몸에 닿으면 열이 나서 타거나 원자가 이온화되면서 화학적 변화를 겪게 된다.


따라서 전자기파를 잘 이용하면 종양을 화학적으로 태워 버릴 수도 있고, 종양의 DNA를 망가트려 종양세포의 생물학적 증식을 멈추게 할 수도 있다. 바로 이것이 방사선으로 종양을 치료하는 기본원리다.


양성자나 중입자 치료가 필요한 이유


종양을 직접 죽인다는 점에서 방사선 치료는 매우 효과적이다. 게다가 방사선은 체내 깊숙이 뚫고 들어갈 수 있으므로 조준만 잘한다면 수술하지 않고도 인체 밖에서 방사선을 조사함으로써 종양을 치료할 수 있다.


또 엑스레이 촬영 때와 마찬가지로 환자가 느끼는 고통도 없다. 이런 점만 따진다면 방사선 조사는 꿈의 치료법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사실 전자기파 입장에서는 상대가 종양세포인지 아니면 정상세포인지 알 방법이 없다. 그저 똑같은 세포일 뿐이다. 그러니 엑스선이나 감마선을 우리 몸에 쪼이면 체내에 있는 종양세포를 죽이기도 하겠지만, 종양세포 앞에 있는 정상세포도 같이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급적 정상세포에 미치는 피폭을 줄이기 위해 빔의 방향을 바꾸어 가며 방사선을 조사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렇게 방향을 바꾸어 쏘면 정상세포의 피해를 최소로 유지하면서, 종양세포에 여러 번 피폭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방사선 종양 치료에 있어 가장 큰 관건은 종양세포에는 많은 에너지를 전달하면서도 정상세포에는 최소한의 피해를 주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양성자 치료나 중입자 치료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인체에 쪼인 양성자는 엑스선이나 감마선, 또는 전자와는 확실히 다른 행동을 한다. 양성자는 전자와 같은 크기의 전기를 띄고 있지만 전자보다 2000배나 더 무거운 입자다. 그래서 양성자는 원자의 전자구름을 쉽게 뚫고 지나갈 수 있다.


어린이들이 가득 찬 운동장에서 같은 또래의 한 아이가 빠른 속도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가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얼마 달려가지 못하고 다른 아이와 부딪혀 넘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육중한 몸을 가진 어른이 뛰어가는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른은 아이들을 밀쳐내며 한참 동안 어린이 들 속을 뚫고 지나갈 수 있다. 원자 속 전자구름을 만난 무거운 양성자가 바로 이런 모습이다.


하지만 아무리 덩치가 큰 어른이더라도 아이들과 여러 번 부딪히게 되면 서서히 힘을 잃을 수밖에 없고 결국은 지쳐 쓰러져 주저앉게 마련이다. 양성자도 마찬가지다. 물질 속을 뚫고 지나가면서 아주 조금씩 에너지를 잃은 양성자는 어느 순간에 갑자기 모든 운동에너지를 다 쏟아내며 멈추게 된다. 양성자와 같은 중입자가 이렇게 어느 한곳에 이르러 에너지를 모두 고갈시키며 멈추는 현상을 물리학자들은 ‘브래그(Bragg) 피크’라고 부른다.


바로 이 브래그 피크를 활용하면 그야말로 꿈의 종양 치료가 가능해진다. 정상세포에는 최소한의 피해를 주면서 종양세포에 도달해 폭발적으로 에너지를 쏟아 부어 종양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양성자의 에너지를 조절하면 폭발하는 위치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종양의 위치에 맞게 빔의 에너지를 조절하면 정밀 조준 타격도 가능해진다.


치료 대상 종양에 따라 사용법 달라


중입자 치료는 양성자 대신 더 무거운 핵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탄소의 핵은 양성자가 6개, 중성자가 6개가 뭉친 덩어리고 양성자보다 12배나 무겁다. 무겁고 전하가 더 큰 만큼 종양에 미치는 피폭도 더 크다. 그렇다고 중입자 치료기가 양성자 치료기보다 항상 치료효과가 더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양성자가 수류탄이라면 중입자는 포탄과 같다. 치료의 대상이 되는 종양의 종류에 따라 어떤 것이 더 효율적인지는 의사가 판단할 일이다. 확실한 것은 방사선 치료와 더불어 암은 서서히 정복돼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 ESC 회원)

내일신문과 ESC가 함께 과학칼럼 코너를 신설해 2023년 새해부터 매주 화요일 '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찾아갑니다. ESC 회원 과학자 칼럼니스트들의 맛깔난 '우리를 둘러싼 과학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사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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