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과학자와 피아노 #29 클래식만 클래식한가?

블랙소스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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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클래식’이란 말은 잘못된 영어, 내지는 콩글리시라고 흉보기 어려울 정도로 정착되었기도 해서지만, 세상의, 그리고 정보의 mobility가 점점 더 좋아지는 기술 진보의 추세를 포함해 글로벌화가 가속되면서 자꾸 따지기에는 시시콜콜한 논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지경이면, 국영방송에서도 클래식 전문 방송을 영어로 버젓이 ‘Classic FM’이라고 로고스럽게까지 표기해도 그냥 넘어가도 괜찮을까? (실제로 한국어로야 ‘클래식 FM’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지만 영어만큼은 ‘Classical’로 바꾸어야 하지 않냐는 고객 의견을 보내본 적도 있다.)


근래에, 아마 2021년으로 기억하는데, University of Oxford에서 출간하는, 영어 사전의 전통과 역사를 대변하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OED: Oxford English Dictionary)에 한국어 단어 26개가 새로 등재되었다는데, 이 중에는 심지어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아직 올림말이나 의미가 반영되기도 전에 더 먼저 낙점을 받은 단어들도 포함된다. ’먹방‘, 심지어는 한국어인지 영어인지 모를 오묘한 조합의 ’치맥‘까지도. 영어가 언어로서 세계적 ‘product’이 된 이유가 다양한데, 그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유연함이다. 언어 현상은 경제/사회/문화적 환경에 따라서도 계속 변하니, ’콩글리시‘라는 말이야 말로 사어가 되기까지 얼마 안 남지 않은 시대 아닐까?


영어의 원 표현인 “classical”, 또는 “classical music”을 아주 무난히 한국어로 옮기면 고전적이라거나 고전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형용사로서 “classic”과도 구분하기 어려워질 여지가 남고, 무엇보다도 고전주의 양식이나 시대를 일컫는 (특히 음악에서는 일명 ‘고전파’라는) 한정적 의미와 혼선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면에서는 그냥 ‘클래식’으로 정착된 표현이 우리 단어로서 썩 괜찮기도 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두 가지로 구분해 ‘고전음악’의 의미를 풀이한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클래식’과 비슷한 특성을 지닌다는 의미로, 편의상 ‘클래식하다’라는 표현을 곁들이려 한다. (우리말 표제어 '클래식'의 특수성과 모호함, 국립국어원 기준 등을 두고는 다른 기회에 다시 조금 더 미묘하게 다룰 화두기는 하다.)


눈치가 빠른 분들께서는 직감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클래식이 아닌 음악 이야기를 꺼내기 위함이다. 그 가운데서도, 이 또한 이야기를 풀어 놓자면 한도 끝도 없을 테니 (게다가, 대칭적으로, 클래식한 비클래식이 아니라 클래식하지 않은 클래식도 다루어 볼 법하니 사연이 길어지기 마련이라) 여기서는 한국의 대중 가요에 한해서만 기억을 불러와 보려 한다.


딱히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려운 취향이나 성격으로만 보면 대중음악하고는 담을 쌓고 살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겠지만, 아무래도 혼자서만 사는 세상이 아니다 보니, 주변에서 개인 의지나 선호도와는 무관하게, 가령, 회식 후에나 휴일에도 집에서나 노래방을 가자고 한다든지 등 여러 여파로 가요 등 대중음악에 전혀 노출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실제로 필자도 학교 음악 시간 외에 별도로 처음 들은 음악이라는 건, 최소한 기억 속에서는 부모님께서 몇 갑 사다 두신 녹음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조용필 가수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고추잠자리’ 같은 대중가요다. 하지만 일부러 찾아 듣지는 않았던 만큼, 그리고 피아노 사운드에 워낙 매력을 느낀 만큼, 드물게나마 기억의 일부를 차지하게 된 노래들은 아무래도 피아노 반주가 인상적인 몇몇 노래들이다.


아마 여기서 ‘인상적’이라는 그 느낌이야말로 대개는 클래식함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심증이 강하게 든다. 피아노가 피아노답게 쓰였으니 말이다. 이런 노래들의 일부 파트는 슈베르트의 독보적 선율력이나 쇼팽의 서정성까지 방불케도 한다. 멜로디 라인의 대중성만 놓고 보면 라흐마니노프적이기도 하고. 세월이 많이 지났어도 여전히 쉽게 찾아서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니 간단히 나열만 해보면, 푸른 하늘, 015B, 더 클래식, 2·5·共·感 등 적어도 2인조 이상의 (프로젝트) 그룹이 발표한 작품의 일부인데, ‘우리 모두 여기에’, ‘이젠 안녕’, ‘마법의 성’, ‘나만 시작한다면’ 정도, 여기에 EP(Electric Piano), ‘소위 일렉 피아노’를 쓴 예를 보태면 그 수가 조금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그럼,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아닌) 노래는 그러면 이 가운데 있을까? 공교롭게도 그렇지는 않다. 단, 작사/작곡가는 이 중에서 일치하는 주인공이 있다. 피아노가 위와 같은 스타일로 쓰이지는 않았음에도, 가사가 무척 고전급이어서다.


바로 ‘네모의 꿈’이라는 노래다. 널리 사랑받는 국민가요급을 그림책으로 새롭게 펴 내려는 모 출판사의 기획물로도 선택을 받은 노래다. 여기서 클래식하다라는 의미는 오래도록 곱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정도로 표현하면 적절할 듯하다. 이 노래의 가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세간의 대체적 해석은 다양성 부재나 개성 상실로 인한 획일성에 대한 경고나 환기, 인간적 가치를 향한 어른(기성세대)의 모순성 등을 꼬집는 쪽이라, 특히나 한국 사회에서는 앞으로도 꽤 오래도록 유의미하겠지만,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작사자 자신이 설명하는 발상의 기원은 제법 반전적이기도 하다(현상론적으로는 결국 같은 곳으로 수렴하는 듯하지만). (눈동자까지) 네모난 별에 사는 ‘네모’라는 외계인이 지구에 자신들의 네모(가 아름다운) 세상을 알리기 위해 텔레파시를 보내고 있다는, 그래서 지구인들은 이 최면에 걸려 정말로 많은 꼴을 네모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상상에서 탄생했다고 하니 말이다. 작사자의 라디오 DJ 시절, LP, CD 알맹이 정도를 제외하고는 스튜디오 내 주변 모든 것이 네모라는 착안에서 그런 상상이 들었다고 했다. 가사가 정말 아기자기하지만, 사회 풍자적이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필자는 기악곡을 좋아하는 편이고 가사는 여러 이유에서 비선호하는 편임에도, 이 노래가 떠오를 때는 늘 다시 생각해보고는 한다—아무리 위대한 작품인들 기악만으로 언어 없이 과연 이런 메시지를 이런 느낌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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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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