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홍성욱의 그림으로 읽는 과학사 - 다면체부터 가이아까지, 과학 문명의 컬렉션들 (홍성욱 저 | 김영사)

2023-12-08
조회수 204

과학기술학자 홍성욱의
‘과학사 갤러리’에 초대합니다!

강의와 연구를 위해 오랫동안 수집한 진기한 그림들
이미지가 주인공인 과학사, 과학을 이끄는 이미지의 힘

이미지가 주인공인 ‘과학사’


이미지는 과학의 부산물일까, 과학의 역사와 함께한 주역일까?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기술학자 홍성욱이 강의와 연구를 위해 오랫동안 수집한 진기한 그림들을 한 권에 담았다. 세상의 근본원리를 탐구했던 플라톤의 다면체, 이성의 힘으로 세계의 지식을 끌어모으려고 했던 ≪백과전서≫, 근대 화학혁명을 일으킨 라부아지에 부부의 실험실, 19세기 탐험지의 생태 정보를 종합한 훔볼트의 ‘자연 그림’ 등 과학의 역사에서 소품처럼 여겨지던 이미지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홍성욱의 그림으로 읽는 과학사≫는 그간 “이론과 개념의 발달을 중심으로 기술되어온 과학사”에서 비켜나 ‘이미지’를 무대 한가운데에 세워두고 과학의 역사를 새롭게 들여다보자는 동기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여느 과학사 책처럼 페이지를 빼곡히 채우는 수식이나 알쏭달쏭하고 딱딱한 개념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에스허르의 〈별〉(1948)이나 뒤러의 〈멜랑콜리아 I〉(1514) 같은 명화, 뉴턴의 ≪프린키피아≫와 케플러의 ≪루돌핀 테이블≫ 같은 명저들의 표지와 세밀한 권두화(卷頭畵), 과학혁명을 이끈 인물들의 초상화, 다윈의 실험 노트와 기이한 모양의 근대 실험실과 실험 도구, 18~19세기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고안한 기발한 그래프들로 채워져 있다. 각각의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독자의 눈을 사로잡거니와, 한 컷 한 컷 그림에 담긴 사연들은 과학의 세계가 얼마나 풍성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새롭게 문을 연 ‘과학사 갤러리’

≪홍성욱의 그림으로 읽는 과학사≫는 꾸준히 독자에게 사랑을 받아온 스테디셀러 ≪그림으로 보는 과학의 숨은 역사≫(2012, 문광부 우수교양도서 최우수 과학도서에 선정)의 개정판이다. 건축물로 치면 11년 만의 리모델링인 셈인데, 디자인 콘셉트는 일종의 ‘과학사 갤러리’이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편안하게 눈으로 즐길 수 있게끔 도판의 크기와 배치 등 편집에 공을 들였다. 디자인적으로는 새로운 판형과 본문 디자인으로 옷을 갈아입고, 오래된 이미지를 교체하고 새로운 컬렉션을 추가했다. 내용적으로는 시의성이 떨어지는 장(‘광우병과 변형 프레온’)을 하나 덜어내고 두 개의 장(‘18~19세기 데이터 시각화 혁명’와 ‘브뤼노 라투르와 가이아’)을 추가했다. 추가된 두 꼭지는 각각 최근의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 위기와 관련하여 과학기술학 분야에서 주목받는 주제이며, 역시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다채로운 도판을 싣고 있다. 독자들은 갤러리를 거닐듯, 눈길 가는 그림부터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나가도 좋을 것이다.

그림으로 읽는 ‘진짜 과학’ 이야기
- 이 책을 재밌게 읽는 법


갤러리의 문을 열고 걸음을 내딛기 전에 이 책이 어떤 주제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미리 살펴봐도 유용할 것이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과학사의 연대기적인 흐름을 따르면서도 각기 다른 열두 가지 주제를 담고 있다.

먼저 고대 철학자의 다면체 이야기로 문을 여는 1부에서는 튀코 브라헤부터 갈릴레오까지 근대 과학의 탄생을 이끈 주요 인물들이 등장한다. 특히 천문학의 발전을 이끈 코페르니쿠스, 튀코 브라헤, 케플러가 비중 있게 다뤄지며, 그림 속에 장식된 천문도(우주 구조를 나타낸 그림)의 변화를 통해 당대 과학계에서 권위 있게 받아들여지는 우주론이 바뀌는 상황을 포착할 수 있다. 독자들은 다면체와 천문도 그림들에 주목하며 1부를 읽어도 좋다.

2부에서는 이성과 근대성으로 대표되는 근대 과학의 특징을 이미지로 이야기한다. 근대 출판물의 표지 그림과 권두화, 과학자들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컴퍼스가 대표적이다. 특히 시인이자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의 〈뉴턴〉(1795) 그림은 주목할 만하다. 블레이크는 당대 최고의 과학자 뉴턴을 구부정한 자세로 컴퍼스를 들고 세상을 재고 있는 인물로 묘사했는데, ‘이성의 신’(유리즌)에 복종하는 세태를 비판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이와 같은 과학 대 예술, 이성 대 상상력의 충돌은 블레이크의 작품을 본뜬 조형물(에두아르도 파올로치의 〈뉴턴〉)을 영국 국립도서관 앞에 설치하는 문제를 두고 몇 세기 뒤 재점화된다.

2부에서 주목해볼 다른 주제는 과학사에서 주변부로 여겨졌던 여성과 과학자의 조수(테크니션)에 대한 재조명이다. ≪프린키피아≫ 프랑스어판 번역자이자 볼테르의 연인이었던 샤틀레 부인과 남편과 함께 화학혁명을 이끈 라부아지에 부인이 대표적인데, 그들은 과학자로서 충분한 능력과 역할을 보여주었음에도 오늘날 각각 유명 철학자의 연인, 라부아지에의 아내로서만 여겨질 뿐이다. 한편, 라부에지에 부인의 실험실 그림에서 어둡게 그림자 처리된 과학자의 조수들도 빼놓을 수 없다. 해당 그림 속 인물이 누구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과학사에서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다. 저자가 강조하듯 “과학의 역사를 볼 때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감춰진, 이름 없이 사라져간 사람들의 목소리,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실제로 과학 활동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3부에는 보다 낯설고 특별한 이미지들이 실려 있다. 생명과 기술의 진화를 보여주는 나무 이미지, 구획된 뇌 구조, 초기 막대그래프, 울퉁불퉁 갈라지고 쪼개진 지구 이미지 등이 대표적이다. 새롭게 추가된 장들에 주목해보자. 18~19세기 ‘데이터 시각화 혁명’을 다룬 11장에서 오늘날 우리가 통계자료 등을 한눈에 보여주기 위해 흔히 쓰는 시각 기법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 놀랍게도 코로나 팬데믹 때 확진자, 사망자, 치명률을 거의 실시간으로 보도한 대시보드는 윌리엄 플레이페어가 처음 사용한 막대/원형 그래프, 샤를 조제프 미나르의 흐름 지도, ‘백의의 천사’로 유명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장미 그래프 같은 시각화 방법을 채용했다.

12장에서 과학기술학 연구자 라투르가 가이아의 개념을 새롭게 시각화한 ‘임계 영역’ 이미지도 흥미롭다. 우리는 ‘가이아’라고 하면 우주에서 본 구형의 푸른 지구를 떠올리지만, 엄밀히 말하면 “인류와 인류에게 의미 있는 비인간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가이아의 핵심 개념)은 지표면의 암석, 땅, 숲, 물, 대기로 구성된 얇은 층이다.” 라투르는 가이아를 “두께가 몇 킬로미터를 넘지 않는 얇은 막에 불과하다”라고 강조하며 ‘임계 영역’이라고 부르고, 조경 건축을 전공한 알렉산드라 아렌과 함께 시각화했다. 신화적이고 미학적인 느낌은 덜하지만, ‘가이아’의 개념에 충실한 이미지다.

한편 과학기술학 연구자 라투르가 가이아의 개념을 새롭게 시각화한 ‘임계 영역’ 이미지도 흥미롭다. 우리는 ‘가이아’라고 하면 우주에서 본 구형의 푸른 지구를 떠올리지만, 엄밀히 말하면 “인류와 인류에게 의미 있는 비인간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가이아의 핵심 개념)은 지표면의 암석, 땅, 숲, 물, 대기로 구성된 얇은 층이다.” 라투르는 가이아를 “두께가 몇 킬로미터를 넘지 않는 얇은 막에 불과하다”라고 강조하며 ‘임계 영역’이라고 부르고, 조경 건축을 전공한 알렉산드라 아렌과 함께 시각화했다. 신화적이고 미학적인 느낌은 덜하지만, ‘가이아’의 개념에 충실한 이미지다.

과학을 이끄는 이미지의 힘

저자는 이 책에서 과학 지식을 구성하는 이미지의 역할에 주목한다. 3부의 핵심 주제이기도 한데, 저자는 ‘왜 과학의 역사에서 특정한 개념과 특정한 이미지가 대응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예를 들어, 왜 우리는 뇌를 작은 방으로 나눌까? 왜 생명을 분류하는 데 나무를 이용할까? 왜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데 그래프를 사용할까? 왜 가이아를 그리는 데 구형 지구를 사용할까? 많은 이들이 과학자들은 연구가 다 끝난 뒤에 자신의 연구를 그림이나 그래프로 나타낸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나무 이미지’ 장에서 보듯, “과학에서의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다. 이미지는 이미지를 낳고, 오래된 이미지는 새로운 이미지로 점차 변한다. 죽은 것 같은 이미지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엉뚱한 곳에서 부활한다.” 곧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미지들이 거꾸로 과학자의 연구나 이론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거나 특정한 방식으로 틀 짓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그만큼 ‘이미지의 힘’이 강력할 수 있다는 얘기다.

독자들은 이 지점에서 이 책이 특별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기존의 과학책들이 이미지를 과학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묶어두었다면, 이 책은 과학과 이미지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데까지 해석을 확장한다. 그래야 과학사에서 이미지가 차지하는 정당한 위치를 발견할 수 있고, 과학의 역사를 더욱 풍성하게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이미지들을 읽는 것은 과학을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맥락에서 파악하는 작업이며, 이런 작업은 과학을 더 흥미롭고, 더 살아 있으며, 더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진솔하지만 야심 찬 저자의 의지가 담긴 이 책을 통해 독자들도 “진짜 과학”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보기 바란다. 이 책이 전시하는 과학기술 문명의 컬렉션들은 독자들에게 과학을 더욱 친숙하고 생생하게 느끼도록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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